망망대해

퇴사에 즈음하여

2020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코로나라는 엄청난 변수가 발생하고 난 뒤에,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바뀌고, 삶에 대한 가치관도 바뀌어버리고 있다. 당차게 세웠던 2020년의 계획이 무참히 바뀌면서 다시 한번 기생충의 명대사, "넌 다 계획이 있구나"가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한해가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변화무쌍한 한 해가 될 것임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왜냐하면, 난 여전히 퇴사를 할 것이기 때문에.


코로나 때문에라도 퇴사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감과 무게감이 이전보다 더 무거워졌지만, 그 덕분에 좀 더 다가올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된거라고 생각해본다. (그러니까 더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


익숙한 사무실에 앉아 창문 밖 하늘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떠오르는 단어가 하나 있다.


망망대해


퇴사라는 커다란 이벤트를 앞두다보니, 매일 같이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고,

사내 시스템의 메일을 통해서 글자로 일을 진행하던 일상이 갑자기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


망망대해


지금 내가 있는 대기업은 잘 정리되고, 거대한 시스템과 복지 속에 있지만 나의 역할이 크지 않고, 또 개인의 업무나 성향이 회사의 경영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가 없다.(아 그건 아마도 내가 대리직급이라서 그런것이기도 할테지만) 그러다 보니 대기업에서의 생활은 호화로운 크루즈선을 닮았다. 때론 파도에 흔들리지만 안정적이다. 그치만 정해져 있는 경로로만 가야하고, 그 경로를 나 스스로가 바꿀 순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 크루즈에서 소비자이지, 생산자가 아니다. 이 크루즈선에 올라탄지 5년. 이제 나는 태풍으로 몰아치는 바다로 구명보트만 되어도 좋겠다 뗏목 하나 놓고 내려갈 준비를 한다.


많은 것을 보고 배웠지만, 객실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직접 부딪혀보는 파도에 비할바가 안될 것이다.


흐흐. 떠나보자. 망망대해 위로.

바다 위의 파도가 많이 거칠겠지만, 나는 어디로든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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