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함, 조급함, 교만함, 그리고 내 낮은 자존감
나는 육아에 욕심이 많은 엄마인가? 주변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진담반 농담반으로 "육아를 위해서 너를 너무 갈아넣고 있는거 아니냐."고 이야기한다. 그럴때마다 나는 그냥 단순히 '엄마가 되면 당연히 아기를 위해 희생해야하는 건데 어쩔수 없지.'하고 한귀로 흘려들었다. 그러다가 얼마전 남편과의 싸움 과정에서 나의 양육에 대한 욕심과 완벽주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기는 예민한 기질의 아기이다. 거기에다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격렬하게 표현도 잘(?)하고 가만히 있지 않는 활동적인 아기다. 나는 심리학 석사를 전공했고, 그래서 초기 3년의 중요성에 대해 관심이 많다. 무엇보다 이 기간에 정서적, 인지적으로 필요한 것을 최대한으로 충족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가장 좋은 것을 주고싶은 마음이 커서 육아 서적도 많이 보고 내가 모르는 것, 놓치는 것이 있을까봐 걱정도 종종한다. 아기의 정서, 인지 발달에 관심이 많고 그것을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크다.
여기서 두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아기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도대체 왜 이렇게 아기에게 최상의 것을 주고싶은 것일까'에 대한 것이다. 먼저 나는 '아기에게 가장 좋은 것'에 대해 명확하게 생각해서 정리해 본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냥 막연히 좋은 것을 찾고 있었을뿐, 양육의 목적을 생각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주려고 하는 것이 많이 과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지적, 정서적으로 최고의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인데 인지적으로는 아기의 무궁무진한 뇌의 발달시기에 맞추어 계발할 수 있는 많은 뇌의 시냅스들을 활성화시켜두고 싶었던 것 같다. (이렇게 글로 적고보니 벌써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다. 하하.) 그래서 언어, 공간지각능력, 수능력 등 말랑말랑할 때 자극을 적절히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감정적으로는 안정애착을 형성하는데 최선을 다해서 아기가 정서적으로 밝고 안정되길 원했던 것 같고 무엇보다 이 세상에 신뢰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적으면서도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내 주변 사람들이 이런 나의 극성을 보고 나에게 한소리씩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양육 초기 불면증으로 상담을 받을 때도 선생님이 나에게 "아기에게 완벽한 것을 주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불필요하다. 아기도 좌절을 맛보고 어려움을 알아야 스스로 발전할 수 있다."고 하셨다. 이것을 내 머리로는 인정해도 내 마음으로 인정이 잘 안되었던 것 같다. 내가 신도 아니고 아기의 인지와 정서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 무엇보다 내가 주는것이 완전할 수 없을텐데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기가 모든 것을 쉽게 얻으면 아기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세상은 나와 다르다. 스스로 노력해서 가져야하는 것들이 많은데 부모가 부족함 없이 키우려하면 아이는 오히려 세상에 적응을 못한다고 한다. 근데 이게 말이 쉽지 도대체 대충 주는 것은 어떻게 하는거지 하는 생각이든다. 사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클지도 모른다. 초기 3년에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완전히 채워주고싶은 욕심이 내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짜로 아기에게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 예전에 한 슈퍼바이저 선생님이 '내 아이가 고난과 역경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 그래서 독립적인 사람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자신의 양육 목표라고 하셨던 말이 떠오른다. 사실 그런 관점에서는 내가 힘을 이만큼 주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그냥 아기가 하려는 것들에 적절히 반응하고 내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 이외에 큰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 또한 이 의견에 동의한다. 거기에 더해서 나는 '스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그것을 위해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내가 먼저 이것저것 자극이나 필요한 것을 제공하려고 하기보다는 아기가 스스로 하고 찾도록 기다려주고, 반응해주는 조금 더 여유있고 지금보다는 거리가 있는 엄마가 되어야하나 싶다. 그래야 혼자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실패도하고 짜증도내보고 요구도해보는 경험이 되지 않을까? (물론 우리 아기는 이미 요구사항이 굉장히 많긴 하지만...) 아마 이건 아기가 조금 더 크면 필요한 자세이긴 할 것 같지만 나는 유념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사실은 내 뼈에 사무치게 와닿지는 않는데, 머리로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노력중이다.
두번째로 나는 왜이렇게 아기에게 최상의 것을 주고싶은 것일까? 이게 바로 완벽주의의 핵심일 것 같은데 내가 갖지 못했던 것을 제공하여 아이도 완벽하게 컸으면 하는 바람, 그리고 양육을 정말 완벽하게 잘 하고 싶다는 욕심이 큰 이유인 것 같다. 나는 나 스스로나 남편을 바라볼때도 이런 자극이 더 있었다면 내가 이런 영역을 더 잘 했으려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남편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둘다 서로의 어린시절에 대해 아쉬워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다. 즉, 내가 현재 가진 능력들을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있고, 내 지적능력이 남들보다 더 뛰어났으면 하는 마음이 큰 것 같다. 그렇기에 내가 가지지 못했던 것들을 자꾸 아이에게 충족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 더 안절부절 욕심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초기 3년 동안 뇌의 75%가 발달한다는데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안되지 않을까 하는 조급함도 있다. 만약 이런 내 마음을 대입하여, 우리 엄마가 이런 마음으로 어린 나를 바라보고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해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정말 답답하고 정신 없고 싫을 것 같다. 아이도 아마 이런 나의 조급함과 욕심을 느끼고 아이가 짜증을 많이 내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급 미안해지네. 아기의 많은 짜증의 원인 중 일부가 내 무의식일지도 모른다니!)
그리고 양육을 완벽하게 잘 해내고 싶은 내 마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올까? 나는 원래 공부도 일도 욕심이 많아서 한번 하면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크다. 양육도 내가 잘 해내서 나중에 '저는 우리 아이를 이렇게 키웠더니 이렇게 컸어요.'하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사실 인정받고자 하는 대상이 특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 그래야만 이 시간이 헛되지 않은 시간이라고 생각될 것 같다. 욕심과 야망이 사실은 엄청난 것이다. 바로 이거네, 이게 바로 내 불안과 조급함의 원인이겠구나! 만약 아이가 내 노력과는 달리 별볼것 없는 아이로 자란다면? 지금 이 시간들이 헛된 것으로 생각될 것이다. 생각만해도 너무 힘빠지고 싫다. 하지만 조금만 객관적으로 떨어져 생각해보면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인간의 노력으로 한 인간을 완벽히 키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마음이 아이에게 독이 된다는 것은 불보듯 뻔하고 말이다. 어쩌면 내 완벽주의 안에는 엄청난 교만이 숨어있기도 하다. '내가 노력하면 다 돼!'하는 마음이다. 왜 자꾸 이렇게 내 힘으로 무엇이든 잘하고 인정받고 싶은지 그 마음의 끝까지 더 가보지는 못한 것 같다. 내 낮은 자존감과 관련이 있을까? (아직도 자존감이 낮다니 이럴수가!) 아직 잘 모르겠다. 나는 크리스천인데 내 이런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약간은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를 주셨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순한 기질의 아이었다면 분명 '내가 공부하고 그대로하니 아이가 이렇게 잘 따라오네? 역시 나야'했을 것이고, 그러면 다른 엄마들을 바라볼 때 얼마나 교만한 태도로 무시했을지 불보듯 뻔하다. 그런데 그 마음이 많이 꺾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들여다보니 여전히 그 마음이다. '내가 이렇게 노력하면 우리 아이는 잘 될거야'하는 교만함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구나 싶다. 이런 내 마음을 꺼내놓고 나니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고, 이 마음을 어떻게 내려놓아야하나 감이 안온다.
하지만 나는 엄마니까 내 부족함을 보고 다시 한번 생각을 바로잡아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마음을 내려놓아본다. 내 호흡도, 이 세상의 어떤 일도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는데 아이도 마찬가지임을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겠다. 내가 주는게 가장 좋은 것이라는 교만함도 버려야겠다. 조급함과 불안함이 아이에게는 엄청난 독이 될수도 있고 오히려 아이의 날개를 꺾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완벽한 인간이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즐겁게 건강하게 삶을 즐길 수 있는 아이로 키우자. 그러려면 나부터 삶을 즐겨야하겠지! 아이에게 올인하다가 내 삶을 잃고 나중에 아이탓하는 멍청한 엄마가 되지말자! 적당히 좋은 엄마면 충분하다. 양육에 있어서 더 느긋하고 여유있는 태도를 가진 엄마가 되고싶다. 무엇보다 내가 왜 이렇게 매사에 잘하고 인정받고 싶은지 다시 예전에 도움 받았던 책들도 꺼내 읽어보고 내 마음도 점검해야겠다. 워워, 천천히 내 삶 전체를 점검하는 시간을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