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19/30)

'키'로 자격지심 가득했던 어린 나의 키는 그때와 지금이나 그대로다.

by Shysbook

중학교 2학년 즈음에 학교에서 측정했던 내 키는 173cm 의 보통 키. 하지만 내 또래아이들은 하나 둘씩 쑥쑥 자라는데 비해 나는 더 이상 키가 커지지 않을까 조바심을 감출 수 없었다.

행여나 키가 조금이라도 큰 동생이나 또래를 길에서 마주칠 때 나도 모르게 자격지심이 심했다. 그 아이들과 같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위축되거나 그들의 손짓 하나 발짓 하나에 움찔하곤 했다. ‘키가 크면 뭘해도 무시받지는 않을텐데. ’라며 속으로 질투에 씩씩거릴 뿐이었다. 씩씩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오히려 이런 마음에 위축이 되었다가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키를 키우려 틈만 나면 줄넘기를 1000개씩 했었고,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축구 등등 별의 별 운동을 병행했었다. 학교에서 나오는 밥도, 집밥도 곧잘 먹으면서 틈틈이 체력을 키워나갔다.

덕분에 밤을 새는 일에도 조금은 견딜 수 있었고, 학업성적도 어느정도 오르곤 했다.


그렇다면 키는 자랐을까. 집에 도착하면서 이젠 혼자서 키를 측정해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재는 곳을 찾아보니 거실에 내 등을 기댈 수 있는 서가가 보였다. 스스로 줄자를 가지고 키를 측정했고, 측정기록은 색연필로 표시했다.

결과는 키는 173.5cm 정도. 아무리 줄넘기를 많이해도 잘 먹고 잘 돌아다녀도 키는 자랄 생각이 없는 것만 같았다.

중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넘어갔을 때 158cm 였던 키가 15cm 씩이나 자랐었는데, 다음 해에는 더 자라겠지라는 수학적 귀납법과 같은 추론은 내가 알 수 없는 예외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 후로 키에 대한 강박이 심해졌고 이렇게 자라다가 어느순간 멈추지 않을까 걱정만 늘어만갔다.


하지만 걱정은 또 다른 걱정으로 잊혀지기 시작했던 건, 9월 무렵. 키보다 더 중요했던 내신 관리와 시험공부에 집중하다보니 키에 대한 생각은 서서히 잊혀지기 마련이었다. 막상 공부하고나서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로 키에 대한 강박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움직일 때 움직이고, 밥 먹을 때 잘 먹고, 잘 걷고 하다보니 키가 5cm 씩 자랐을 뿐이다. (지금은 조금 더 자랐다.)


네루다 시인의 <질문의 책> 뒷표지를 넘기다 이런 문장이 나왔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문득 자라지 않는 키에 집착했던 이유를 떠올려보았다. 그 때의 나는 키에 자격지심을 갖고 있었다. 다행히(?) 시간이 흘러 키에 더 이상 자격지심을 갖지 않았지만, 키는 그저 수단일 뿐 또 다른 무언가에 자격지심을 갖고 있음을 발견했다.


자격지심이 좋게 작용할 때도 있었고, 나쁘게 작용할 때가 있었다. 근육이 모자라 비실대던 아이가 지금은 10km 러닝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되었고, 평생 전교 1등 한 번도 한적 없던 반에서 무시당했던 애가 대학에 들어서자마자 과탑을 한 이유도 어릴 적 겪은 자격지심 때문이었다.하지만 매사 더 잘하고 싶어 과욕을 부린 탓에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만든 것도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지금도 나보다 앞서가거나 조금은 더 잘난 사람이 있으면 내가 더 잘해야한다는 욕심이 앞선다.

러닝을 할 때 나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이 보이면 ‘더 잘 뛰어야겠다.’ 라는 마음과 함께 ‘내가 더 뛰어서 따라잡아야하는데!’ 라는 격한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하지만 그 감정이 무심코 튀어나와 나와 상대를 다치게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시절 알게모르게 나의 과욕으로 상대를 힘들게 했던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어리고 자라기엔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일까.. 나로 인해 누군가가 힘들어하는 것이 나의 못난 마음 때문인 것만 같아 울적했었다. 마음쓰지 않으려고, 부족함은 잊고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것만이 자격지심을 떨어뜨릴 수 있을텐데, 미련과 걱정스런 마음이 나를 어찌할 줄 모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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