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초. 심야라디오 DJ가 되다.-1-(24/30)

2016.06.12 난생 처음 꿈을 이루던 순간

by Shysbook


11년 전. 중학생 시절 심야라디오를 자주 들었다.

근심이 있거나, 괴로운 날들이 쌓여서 나도 모르게 밤잠 설치는 날이 늘었던 것 같다. (아마 사춘기 시절이라 그랬을 지도.) 당시 나는 MBC에서 진행했던 <문지애의 뮤직스트리트>(이하 ‘뮤직스트리트’) 를 즐겨 들었다. 새벽 분위기와 적합한 차분한 어조. 잔잔한 선곡 위주로 올리던 라디오였다. 듣다보면 마음이 진정되는 기분이 들어 편안한 잠자리에 들 수 있어 좋았기 때문이다.

‘MP3 플레이어를 키고 라디오를 듣다가 3시를 알리는 ‘띵~’ 하는 시계소리와 함께 본방사수까지 했던 <뮤직스트리트> 열렬한 애청자로 지낸 지 1년이 넘었다. 여기서 만난 수 많은 아티스트들 덕분에 나의 빈약했던 MP3 플레이리스트도 넉넉하게 채울 수 있었다.


라디오와 조금 더 가까워지고싶어 한 번은 용기(?)내서 홈페이지에 사연을 실었다. 첫 눈 오던 학교 운동장의 풍경을 남겼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으로 내가 쓴 사연이 소개되었다. 심장이 콩닥거리기 시작하면서 내 글을 DJ가 읽고 공감해주는 것만으로 오늘 하루가 행복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사연이 소개되는 것도,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았지만

전국 각지의 사연을 듣는 것이 특히나 좋았다. 저마자 갖고있는 사연을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 이입되기도 했다. 밤잠 설쳐가며 공부하는 학생들, 몸도 마음도 아픈 사람들, 아이를 둔 부부, 내일 출근을 앞둔 사람들, 이별의 설움을 겪은 연인들의 이야기 등등.. 가까운 사람에게선 하기 힘들고, 혼자 묵히기에도 갑갑해서 라디오를 통해 털고 싶을 정도의 사연이라면, 아마 그들은 오랫동안 묵혀둔 속내를 어렵사리 용기내서 던진 것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진중하게 느껴지고 보다 공감할 수 밖에 없었던 것만 같았다.


DJ는 사연마다 결코 건성으로, 나의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채 귀로 그들의 마음을 듣고 있었다.

적합한 조언과 공감이 버무러진 채 사연자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하곤했다.


그러자 어린 나는 큰 결심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나도 모르게 언젠가는 나도 차분한 목소리로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해주고 싶다. 저 라디오 DJ처럼 사연을 읽어주고 마음도 같이 읽어주리라고.’


결심을 한 후부터 라디오의 재미에 흠뻑 빠지고, 사연 쓰는 일도 종종하는 일이 하루하루 누적되다보니 <이주연의 영화음악> 에서 직접 진짜 ‘라디오’ 를 선물하기도 했고, <배철수의 음악캠프> 새 코너의 첫 사연이 내 것이 채택되자 집으로 컨디션을 한 박스 보내주기도 했다. 그 정도로 라디오의 애정이 각별해질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2016년 어느 날. 나는 갓 전역을 한 지 4개월이 넘은 휴학생 백수 신분이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찾으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는 심정으로 아르바이트 면접을 여러군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만 앞섰지 준비된 건 하나도 없었던지라 전부 낙방을 해버렸다. 서점, 카페를 서너 곳 지원했지만 ‘나중에 연락 드리겠다.’ 는 정중한 거절(?)만 들었을 뿐이다.


하루는 집 근처 카페 아르바이트 면접을 봤는데, 껄렁한(?) 사장을 만나 마음이 무척 속상했었다. 반말 찍찍, 만사 귀찮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또 면접에서 고배를 마신 것이다.


연이은 실패를 처음으로 겪다보니 자신감과 자존감이 낮아졌다. ‘내가 나와서 할 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구나.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거지?’ 라는 회의감까지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 어리고 나약했던 것만 같다.)


속상한 마음이 들 때마다 습관적으로 일기를 쓰곤했다. 그 날도 컴퓨터를 켜서 한글 파일에 일기를 쓰던 중, 속상했을 때, 기분이 꿀꿀하거나 근심으로 가득할 때 찾던 라디오가 생각났다. 라디오를 안 들은 지 5년이나 지났는데, 오랜만에 들을만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찾아볼까 MBC라디오 사이트에 들어가봤다.


<심야라디오 DJ를 부탁해>



이름부터가 무척 강렬하다. 고정 DJ도 없이 누구나 사연에 뽑히면 1시간을 오롯이 내 목소리와 음악으로 채울 수 있는, 말 그대로 ‘라디오에 내 목소리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하며 전국구로 내 목소리가 송출됨과 동시에 일일 DJ가 됭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어릴적 꿈이 다시금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기 시작하더니 내 마우스 커서는 자연스레 ‘사연과 신청’게시판으로 향하고 있었고, 글쓰기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미친듯이 면접 보면서 느낀 모든 일들을 토로하듯이 글을 써내려갔다.


쓰면서 속이 후련해졌을 때 즈음, ‘설마 이 하소연 덩어리글이 채택이나 될까?’ 라는 반신반의한 마음이 들었다.그냥 저질러보자는 생각에 응모를 덜컥 해버렸다. (뭐 떨어지겠거니 싶었다.)


그러다가 한 1~2주일 즈음 지날 무렵, 학교에서 토익 수업을 듣던 도중 02로 시작되는 지역 번호로 전화가 오는 것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전화를 걸었는데 귓가에 낯익은 컬러링이 들렸다. 방송국 로고송이 흘러내렸다.
‘헉 설마..’
‘안녕하세요 상현씨 저는 심야라디오 DJ를 부탁해 담당작가 누구누구입니다.’
(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가.. 방송국이로구나.)
‘아 네… 반갑습니다.
‘상현씨 사연 잘 읽었고 저희가 메일로 양식 보내드릴 테니 거기에다 사연 작성하셔서 기한 내에 보내주시구요. 녹화 날짜를 정하려고 하는데 언제가 좋으신가요?’
‘헉…오마이 갓.’

그렇다. 나에게 라디오 DJ라는 일생일대기의 꿈의 실현기가 찾아온 것이다. 내 목소리가 1시간 동안 전국으로 송출되는 순간이자 내 이야기와 생각 그리고 선곡으로 1시간을 꽉 채워야하는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그렇게 꿈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서기 시작하는데...

(2부에 계속)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