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오늘은 제가 사회를 보겠습니다.
그렇게 초대를 받아서 간 장항준 감독님과의 저녁식사 자리는 나 외에도 여러 명의 영화 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너무나 설레였던 나는 퇴근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갔고, 도착해 보니 가장 1등이었다. 스탭분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계셨던 것 같은데, 혹여나 하는 마음으로 지난 번 '리바운드' 농구공도 챙겨갔고, 또 '오픈 더 도어' 포스터도 챙겨가 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하나 준비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큐카드였다. 큐카드라고 해 봤자 별 것 없었고, 엽서 크기 종이에 나름의 프로그램 순서를 정해 보고, 간단한 멘트를 기록한 것이었는데, 사전에 안내받기로 나 외에도 다른 영화팬들이 자리한다는 점, 그리고 서로 처음 보는 사이인데다 장항준 감독님이나 송은이 대표님 입장에서도 이렇게 오프라인으로 다양한 영화 팬들을 잠깐의 사인회나 포토타임 정도가 아니라 식사를 같이 하는 자리는 낯설고 어색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기회가 된다면 그 자리를 조금이나마 부드럽고 유쾌하게 만들어 보고 싶어 준비한 것이었다.
다른 팬 분들도 차례차례 약속장소에 오셨고, 스탭 분들은 초대 받은 사람들이 맞는지 확인 후 자리를 안내해 주셨다. 기다리는 동안 같이 자리한 팬 분들과 스탭 분들께 짤막한 인사를 나누고, 내가 준비해 온 큐카드로 사회를 볼 수 있을지 양해를 구했다. 누군가 그런 분위기를 원치 않는다면, 조용히 준비해 갔던 큐카드에 사인을 받고 돌아올 심산이었다.
그런데, 스탭 분께서 찬찬히 큐카드를 훑어보시더니 다들 너무 좋아하실 것 같다며 다른 분들도 동의하신다면 괜챃을 것 같다고 하셨고, 처음 보는 다른 팬 분들도 어색한 분위기보다 이렇게 작은 프로그램이 있는 게 본인들에게도 더 좋을 것 같다고 감사하게도 동의해 주셨다. 그리고 약속시간이 되자 장항준 감독님과 송은이 대표님이 레스토랑 문으로 들어섰다. 다들 환호했고, 낯설면서도 내적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던 그 레스토랑 안의 모든 이들은 즐거워했다.
그렇게 들어서자마자 장항준 감독님은 내 옆자리에 앉으셨다. 영화 볼 때마다 눈에 띄었다며, 고마웠다고. 생각해 보니 다른 여러 유명한 배우분들이 오셨던 GV 자리도 많았던 터라 카메라 들이 참 많았다. 핸드폰 외에는 별다른 게 없었던 나는 기념이 될 만한 몇 장면을 찍고는 영화이야기에 푹 빠져 들었던 것 같은데, 오히려 그 모습이 눈에 띄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송은이 대표님부터 차례 차례 간단한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한 소속사의 대표이기도 하지만 오랜 연예계 생활과 연륜으로 다져진 그는 그 자리를 이끌어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목소리를 들어보니 약간 감기 기운이 있어 보였고,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나는 송은이 님께 잠깐 말씀을 드렸다. '괜찮으시다면, 내가 팬의 마음으로 오늘 이 자리에서 Host이기도 한 대표님은 편히 자리를 즐기실 수 있도록 큐카드를 준비해 왔는데, 저를 믿고 오늘 이 자리를 진행해 봐도 되겠냐고.' 예상치 못했던 발언이라 약간 놀라는 눈치이기도 했지만, 본인의 컨디션이 썩 좋은 편이 아니라 약간은 누군가 도와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는지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렇게 장항준 감독님과 함께하는 식사시간은 1부, 2부로 프로그램을 나눠 진행했고, 식사자리는 아마도 스탭분들이 예상했던 시간보다도 30분~1시간 정도는 더 길어졌다. 즐겁게 자리를 마무리 하고 나가던 찰나에 송은이 님께서 물으셨다. '대체 뭐 하시는 분이세요?' 진심으로 궁금해 하는 눈치. '저는 그저 영화를 좋아하는 직장인입니다.'라고 말씀드렸고, 그러나 또 이런 기회가 언제 있을까 싶어 가방에 있던 명함 한 장을 전해 드렸다. 그 명함은 나의 개인적인 명함이 아니고, 회사 명함이기에 나를 대변하기엔 일부분에 속하지만, 무언가 같이 자리했던 분들로부터 호기심을 자극한 사람이었다니 라는 마음에 짜릿함도 있었다.
그리고 엊그제 장항준 감독님이 참여한 영화 '더 킬러스'가 개봉했는데, 개봉일에 맞춰 극장을 찾았더니. 어머나! 장항준 감독님은 그 넓은 극장에서 나를 발견하곤 반갑게 미소지었다. GV가 다 끝나고 극장 밖으로 나서야 하는 그때, 감독님은 정말 반갑게도 내가 있는 쪽으로 와 주셔서 인사를 해 주셨고, 나도 참 반갑게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분명히 느꼈던 것 같다. 앞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덕질 계속해도 될 것 같다고. 이렇게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계속해서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본격적으로 덕질을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에피소드가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써야 할 지 어리벙벙하지만 오늘은 결심했다. 내 머릿속에만 담아 놓지는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