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근육량도 늘어나는 락페
영화는 극장에서 즐길 수 있고, 자리가 정해져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더 좋은 자리에서 보고싶은 마음도 있지만 티켓팅을 통해 온전히 내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콘서트도 마찬가지다. 스탠딩 콘서트가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공연장은 티켓팅을 하고 좋은 자리를 선점하는 데서 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락페는 다르다. 락페는 그야말로 대환장의 잔치다. 게다가 한여름의 절정에 열리지 않는가. 덕질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이전에 내가 찾았던 공연장은 소극장이었기에 스탠딩이었어도 실내였던 데가 그렇게 무리가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40대가 아닌가. 일단 최애 밴드가 락페에 나온다는데, 오디션에 합격하고 CD에 내 이름까지 기록해 준 그 밴드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오프라인에서도 응원해야 하지 않겠다 하는 마음으로 처음에는 정말 요즘의 락페가 어떤 분위기 인지도 모르고 티켓팅을 했다.
그렇게 찾아 간 펜타포트는 8월의 가장 뜨겁고 열기가 넘치는 한 여름의 정점을 찍는 락 페스티벌 이었다. 공연 안내를 보면서 오호라 돗자리 펴는 공간도 있고, 다회용기에 먹을 것도 간단히 지참할 수 있다는 말에 가족과 같이 이런저런 짐을 꾸려 찾아갔는데, 웬걸 돗자리 구간은 무대를 즐기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었고, 스크린으과 음향으로 즐기는 자리에 가까웠다.
이제 LIVE와 오프라인 덕질에 빠져버린 나는 돗자리 구간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가족에게 돗자리 구역에 이런저런 짐을 맡겨 놓은 채 나는 그야말로 '전진'을 했다. 스탠딩 존이 그렇게 어마무시한 공간인지 몰랐다. 내 주위에는 어제도 술자리로 흥겹게 시간을 보냈을 것만 같은 청춘들이 한가득이었다. 아마도 누군가 스탠딩 1열의 인파가 어떤 분포를 나타내는지 간단한 설문조사라도 했다면 나는 가장 연령대가 높은 구간에 속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이제는 화장실도 갈 수 없는 구간에 들어선 나는 이제나 저제나 나의 최애 밴드가 등장하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시간이 또 참 신기한 것이 오랜만에 즐기는 이런 자리가 또 음악과 함께이다 보니 힘든지 몰랐던 것이다. 앞서 나온 다른 밴드들의 음악을 즐기며 아니 이렇게 좋은 것이 있었다니 나는 왜 이제서야 즐길 수 있게 되었는가를 머릿속으로 수만 번 외치며 최애 밴드를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자우림의 등장!
의상부터 이 무대를 위해 얼마나 갈고 닦았을지 각오가 단단하게 보이는 그들이 등장했다. 몇 달 전 같이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던 시간, 또 콘서트 무대에 잠깐이나마 섰던 시간, 리허설을 하며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나의 최애 밴드 자우림은 격력하게 또 다시 없을 멋진 무대를 선사해주었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었는데, 그 무대는 녹화가 되어 그 다음 해에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일순간에 최애밴드는 나의 이름을 CD에도 넣어주더니, 영화 엔딩 크레딧에도 올려주었다. '이런 일이 진짜로 일어난다고?'하는 순간들이 연속해서 일어나는데 그 시기 나는 직장에서도 정말 큰 프로젝트를 맡고 있었고, 주요 경영진에게 매주 또는 격주로 중요한 보고를 하던 시기였더랬다. 그런데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말을 못했지만 정말 덕질이 나의 새로운 엔진이 된 것만 같았다. 그 어떤 어려운 과제도 하나도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고, 해 볼 만한 과제로 느껴졌었다. 이제는 후배들에게 하나씩 하나씩 양보해야 한다는 눈초리를 받는 시절, 나는 새로운 프로젝트로 다시 한 번 일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정말 신기한 경험이 있었는데, 40대의 나의 신체나이가 건강검진을 해도 계속해서 30대에 머물러 있었고, 그 어떤 활동을 해도 체지방량이 늘었으면 늘었지 이제는 감소하는 것이 그리 신기할 것도 없는 시기에 나는 근육량이 늘었다. 이건 모두 최소 4~5시간에서 길게는 12시간까지 견뎌 온 스탠딩의 힘이 아닌가 싶다.
나의 신체나이를 30대에 머물게 해 준 락페, 그리고 덕질은 아마도 앞으로도 게속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