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영화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나이

8. 영화를 제가 많이 좋아하긴 해요.

by 위듀

나의 최애밴드는 정말인지 부지런하고도 열심히 하는 밴드인데, 열심히 해 온 시간을 기록하며 다큐로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최초 오디션에 합격하고 녹음하게 되면서 개인정보 서약서 등 서명하기는 했지만 나는 나중에 그 시간들이 영화로 제작되는지는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영화가 나온들 거기에 내가 나오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영화를 좋아해서 극장이 그저 좋았던 나인데, 아니 내가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고? 물론 어떤 연기를 한 것이 아니고 팬으로서 참여했던 모습들이 기록된 촬영물이기는 했으나 너무나 신기한 경험이었다. 정식 개봉을 앞두고, 전주 국제영화제에 먼저 초청되었는데, 영화에 스치듯 나온 사람에 불과한 나는 다른 팬들과 함께 티켓팅에 참전했고, 우리는 그렇게 또 오랜만에 전주에서 만났다. 내가 전주를 대체 언제 와 봤었더라. 아 그래 정말 오래 전 가족들과 같이 한옥마을을 구경하려고 한 번 오긴 했었구나. 그런데 두 번째 방문이 영화제라니. 그것도 최애 밴드의 영화가 초대되어서 오게 되었다니.


영화가 시작할 무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역시나! 자우림도 같이 영화를 본다며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영화가 끝난 뒤에 GV가 있을 거라는 안내는 있었지만, 같이 영화를 본다니, 이런 일이 또 있다니 하며 영화를 정말 어떻게 보았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내가 앉았던 자리에서 뒷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멤버분들이 앉았던 터라 어찌나 뒷통수가 신경쓰이던지. 내 뒷통수가 그렇게 신경쓰였던 날은 그 날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영화의 첫 개봉, 그 설레임은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지속되었고,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던 순간 다른 팬분들의 이름과 함께 내 이름이 적혀 올라가는 것을 보고 너무나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정식 개봉될 때에는 편집되었지만 내가 나왔던 장면이 적지 않게 나와서 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영화가 끝나고 GV를 할 때에는 영화에 다 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같이 나눌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정식 개봉이 되던 날. 나는 그 뒤로 영화를 열 댓 번은 본 것 같다. 하루에 3~4번씩 보던 날도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더 촘촘히 보려면 영화를 다 보지 않고 중간에 나서는 방법도 있기는 했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극장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정말 소중했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또 멤버 분들과 GV를 하며 그 계절을 보냈다.


이제 나는 청춘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낯설지만 중년이라는 문턱에 서서 모든 것을 조금은 내려놓고 살아야 한다고 암묵적으로 강요받고 있었다. 나는 이제 일터에서도 후배에게 되도록 양보하고 물러나야 한다고 괜한 눈초리를 느끼고 있었다. 아직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주위의 보이지 않는 목소리에 반응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덕질은 내가 좋아한다면, 하고픈 게 있다면 언제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용기를 내어봐도 된다고 나를 응원하는 메아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은밀한 이중생활은 회사에서도 좋은 에너지가 되어 다시금 반짝반짝한 눈빛을 갖게 해 주었다.


만약, 내가 생각만으로 멈춰 있었다면, 혹은 내 마음을 접어두기만 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있었을까. 덕질은 나의 힘. 새로운 문을 열어 준 열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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