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적인 것을 추구하던 나에게 덕질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뒤로 변화가 일어났으니. 그것은 바로 굿즈였다. 최애 밴드의 음악을 즐기는 것에서 더 나아가 콘서트장에 갈 때마다 굿즈를 하나 둘 모으게 된 것인데, 별 것 아닌 듯 싶고 또 그것은 음악이 나오는 오르골 같은 굿즈도 아니었으나, 그 순간을 기억할 수 있고 기념할 수 있는 그 어디에도 없는 소중한 선물이 되었다.
그렇게 하나 둘 샀는데, 어떤 굿즈는 여전히 소중히 보관만 하고 있는 굿즈도 있고, 어떤 굿즈는 일상에서 너무나 잘 사용하고 있는 굿즈도 있다. 특히 티셔츠 같은 경우에는 출근룩으로도 잘 사용하고 있는데, 은밀하게(?) 새겨진 문구는 나만이 알 수 있는 마법같은 주문처럼 느껴져 회사에서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든든한 마법 망토처럼 작용하기도 한다.
어떤 주에는 굿즈 티셔츠를 번갈아 가며 입기만 해도 출근룩이 완성되는 주도 있었으니까. 그야말로 나에게 굿즈는 실용적이면서도 일상의 나를 또 든든하게 버티게 해 주는 소중한 존재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아이도 최애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아마도 덕질을 시작하기 전에 나였다면 굿즈라는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음악을 듣기 위해 음악 어플을 구독하는 것도 아니고, 음악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물건들로만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덕질에 누구보다도 깊게 빠져든 나는 그런 우리 아이를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사춘기 시절을 지나가고 있는 아이에게 덕질에 빠진 나는 또다른 동지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그게 경제력이 있는 동지라서 너무나 든든한.
아이는 또 어떤 캐릭터 작가를 좋아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에는 그 작가가 전시회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 모두가 그 전시회를 찾아 한걸음에 달려갔던 기억이 있다. 공부를 대신해 줄 수는 없지만 좋아하는 작가를 찾아나서는 일은 같이 할 수 있으니까. 그런 마음으로 전시회를 찾았던 것 같다. 딱히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막연하게 공부가 반갑지 않은 아이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그 호기심과 열정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일이었다.
주말에 찾은 전시회장에는 역시나 작가가 방문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우리 가족은 몇 바퀴씩 돌며 다른 전시를 보고 또 보고 아이의 최애 작가 부스 앞을 서성였다. 그러다 그 작가가 드디어 나타났을 때에는 마치 내가 그 작가의 팬인 것처럼 기쁘기 그지없었다. 조용히 다가가 사인을 부탁드렸는데 반갑게 사인을 해 주고 사진까지 찍어 주었다. 아이는 그 어느 때보나 쑥스로워 하면서도 좋아했고, 조용했지만 팬심을 충분히 전달하고서는 집으로 왔다.
그리고 혹시나 작가를 만나면 전달하려고 그려갔던 그림이 그 다음 작가의 유튜브의 브이로그에 기록이 되었을 때, 너무나 뿌듯해하던 아이를 보며 잘은 모르겠지만 앞으로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서 용기를 갖고 해 나갈수는 있겠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 뒤로도 아이는 여러 굿즈 제작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본인만의 캐릭터를 그려 나가고 있다.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지만 언젠가 본인의 캐릭터가 생기고, 또 그 캐릭터로 전시회를 하게 된다면, 그런 날이 오게 된다면, 우리 가족은 지금 이 때를 또 어떻게 기억하게 될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