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덕질, 누군가를 응원한다는 것.
나는 덕질이 그 무엇도 아닌 사랑하는 마음이자 응원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하는데, 언젠가는 그저 새로운 소식에 목말라 하고 새로운 클립 하나에 심장 뛰었던 시간들도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 것은 덕질은 곧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것이고, 또 누군가를 응원하는 마음은 한 편으로는 나를 응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있는 시간, 누구의 OO, 어딘가의 소속된 내가 아닌 그저 나이기만 하면 충분한 시공간, 덕질은 내게 그런 의미였고, 너무나 가열차게 달려왔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같았다. 이제는 그만하면 충분하다는 이야기들이 내 주위에는 넘쳐난다. 아직 가 보지 못한 길이 많은데, 그저 '나이'라는 잣대로 인해 가보고 싶은 길에 눈길도 주기 힘든 때가 되고야 만다.
그러다 생각해 본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가 있을지도 모를 일인데, 그 동안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마냥 좋아할 수만도 없었던 시간들인데, 이제 40대면 어떻고 또 50대면 어떻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한 일이 아닌데 왜 그렇게 주저했나 모르겠다. 물론 내가 LIVE 공연장을 뛰어가 즐길 수 있었던 것은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함을 안다.
덕질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나는 참으로 우중충하기 그지 없었다. 일과 집이 전부였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아이에게 챙겨주어야 하는 것이 하나라도 빠질까 전전긍긍하던 모습이었다. 어느 것에서도 온전한 만족감을 느끼기 어려웠고, 어떤 일이 하나 마무리 되고 나면 다음 일이 곧바로 이어져 숨쉴 틈이 없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그 경쟁 속에 남은 것은 주위의 얼룩진 시샘이었다. 사무실에서 직접 들었던 그 믿기지 않던 말들은 아직 기억하고 있지만, 그 말들을 내 뱉었던 이들은 지금 나와 한 공간에 있지 않다.
나를 위한다고 얘기했던 말들은 실은 본인들이 내뱉고 싶던 한 마디에 지나지 않았고, 뾰족 올라 온 새로운 싹을 잘라내고 싶었던 날카로운 칼날과도 같은 말들임을 나는 안다. 그 언젠가 나도 그렇게 뾰족한 모습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에게 눈길을 주기 쉽지 않았던 시절들이 있었을 것이고, 지금의 나는 이제는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보고자 노력한다.
누군가를 순수하게 응원하는 마음은 때론 상대에게 온전히 전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수많은 팬 중에 한 명에 불과할 지도 모르고, 언젠가 떠나갈 이와 같아서 일부러 거리를 두게 되는 한 명에 존재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데에는 공교롭게도 누군가를 응원하는 마음이 참 의지가 되었다. 그리고 또 다양한 면들을 이해해 보고자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느 날엔가 이해되지 않았던 후배의 어떤 모습이 있었는데, 덕질을 시작한 뒤의 나는 하나씩 하나씩 신기하게도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물론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도 있고, 이해가 되었다가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때도 있다. 그러나 좁은 세상에만 있던 내가 덕질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며, 은밀한 이중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다양성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덕질은 또 다른 세계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나의 식견도 같이 넓혀져 가는 이 신비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반갑고 고맙다. 내 삶의 가지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덕질을 나는 앞으로도 열심히 할 것이고, 나의 현생 또한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또 한가지 더, 앞으로는 그 일상을 소중히 하면서 하나하나 기록해 보겠다는 다짐도 해 본다. 다름 아닌 이 곳, 브런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