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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싹책방 May 18. 2024

5월의 광주를 떠올린다면

한강의 <소년이 온다>


“빨갱이, 홍어, 전라디언, 전라인민공화국, 슨상님 …”     

 

 호남 지역과 관련된 혐오 표현들이다. 내 기억으로는 2010년대 초부터 이런 단어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난무했던 것 같다.

 물론 호남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을 비하하는 표현들 또한 여럿 존재한다. 하지만 그 정도가 호남 지역을 대상으로 할 때 가장 극심한 것 또한 사실이다.


 호남 지역을 혐오하는 정서와 맞물리는 걸까, 오늘로 44주년이 된 5.18 광주 민주화 운동마저도 공격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민주화 운동으로 분류되는 역사적 사건들 중, 유독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향해 의혹을 제기하거나 아예 사실을 왜곡시켜 버리는 일이 잦다.


 심지어 정치권에서도 폭동이라느니 북한 지령을 받았다느니 그 역사적 의미를 퇴색시키려는 발언들이 터져 나오고는 한다. 광주 시민을 비롯해서 호남 지역의 정치적 성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그 의혹들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인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백 번 양보해서 어떤 의혹이 합당해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 전에 떠올리고 되새겨야 할 것들이 있다.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에서 등장하는 중심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소설이 전개된다.

 쉽게 읽히는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학생 동호, 총을 맞고 죽어서 혼이 된 정대, 출판사 직원인 은숙 등 각 장마다 중심인물이 다르다는 점, 각 장의 서술자와 시점 또한 바뀐다는 점, 그러면서 인물별로 다양한 관점과 상황을 전달한다는 점 등이 이 소설을 단번에 이해하기는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은 분명한데, 인물들 모두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끔찍한 폭력을 겪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서는 <변호인>, <택시운전사>, <1987> 등 주로 영화를 통해 접하곤 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무엇보다 국가의 비이성적인 억압에 대해 분노했다. 그리고 희생자의 숭고한 정신을 존경하거나 정의를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는 감상 등이 뒤따랐다. 학교에서 현대사를 배웠을 때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서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이 있음을 알게 됐다.

  모나미 볼펜으로 손가락 사이를 비틀어서 뼈가 드러났지만, 다시 그 자리를 비트는 장면. 팔을 묶고 잔디밭에 엎드리게 하여 개미들이 사타구니를 물어뜯는 장면. 군인들이 시신을 열십자로 쌓아 올려 탑을 만들고, 부패해 가는 탑에 불을 지르는 장면 등. 인간이 저지른 일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만행들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작가가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바탕으로 집필했다는 출판사 서평을 고려해 보면, 이 소설의 경악스러운 장면들은 오히려 일부에 속할 것이다.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은 얼마나 큰 고통을 짊어져야 했을까.


 44년 전 광주에서 있었던 일은 현재로서는 민주화 운동임이 분명하지만, 당시에는 학살과 공포의 나날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그들이 겪었을 시련에 대해서는 주목해 본 적이 없었고 그저 희생자가 이루어 낸 결과에만 주목했다. 이런 자세로 어렴풋하게 가졌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은 진실하지 못하다고 여겨졌다.


 이 작품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은 희생자와 그 유가족이 겪었을 고통을 독자들로 하여금 추체험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끔찍한 심정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게 만든다는 점이다.

 작가는 그들이 겪었을 상상도 못 할 아픔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며 커다란 고통 속에서 죽은, 혹은 살아남은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또한 희생자들이 체득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고통, 그로 인할 트라우마를 기꺼이 감내하면서까지 지켜내려던 양심을 더 절실하게 느껴볼 수 있었고 그래서 그것이 더 드높은 것으로 다가왔다.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향해 제기하는 의혹들을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사회적으로 합의되고 인정받은 역사적 사건을 폭동, 사태로 칭하거나 북한군이 개입해 있다는 등의 유언비어. 이러한 문제 제기를 통해 얻어낼 것이 대체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 역사적 의미를 퇴색시키려는 행위가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에게 다시 비수를 날리는 잔악무도한 짓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정말 모르고 있는 걸까.


 예나 지금이나 특정 사조에 갇혀 교조적인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판단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이런 세태가 우리 사회에서 목격되는 다양한 유형의 폭력을 생산하는 데 일조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 폭력으로 인해 누군가는 분명 고통받을 것이라는, 이 당연한 인과관계를 모른 척하려는 지금의 세태에서 이 소설은 희생자와 유가족의 고통에 함께 울게끔 만드는 어떤 보루가 되어주고 있다.



(이미지 출처: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성과 정맥,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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