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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싹책방 Apr 13. 2024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

황순원의 <학>

 얼마 전 수업에서 황순원의 단편소설 <학>을 다뤘다. 문학 작품을 근거를 들어서 다양하게 해석해 보는 수업이었다. 요즘 중학생들이 과연 70년 전 소설을 좋아할지 의구심도 있었지만, 이 소설이 주는 감동을 믿어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이 소설에 흥미를 보였다. 여러 명이서 나름대로 유의미한 해석까지 마련해 와서 내심 흐뭇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발표 내용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성삼이와 덕재가 처음엔 갈등을 겪잖아요. 그런데 마지막에 성삼이가 덕재가 화해하는 것처럼, 이 소설은 남한과 북한이 갈등을 멈추고 나아가 통일하기를 바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아요.”

 통일이라는 화제는 뉴스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간혹 통일을 언급하는 뉴스가 반가워 살펴보면 경색된 남북 관계를 다시 확인하며 통일과는 한 걸음씩 멀어지고 있는 현실을 실감하게 된다.

 작년 통일부 통계에 따르면, 7만 3천 명의 청소년 중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한 청소년은 49.8%에 그쳤다.  조사 이후 처음으로 50% 이하로 떨어진 수치라고 한다. 점점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은 비단 청소년들에게만 국한된 인식은 아닐 것이다.


 이런 와중에 학생의 발표에서 남북한의 통일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통일 이슈가 나왔으니 학생들의 생각을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남북한이 통일하기를 바라는 사람 손 한 번 들어 봅시다.”

 뉴스에서 접했던 통계가 눈앞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찬반이 거의 반씩 갈렸고 내가 묻기도 전에 학생들 나름대로 의견이 분분했다.

 반대 측에서는 "북한이랑 통일하기 싫어. 우리가 걔네 먹여 살려야 되잖아.", 찬성 측에서는 "그래도 인구 수도 늘고 경제적인 이득이 클 텐데"라는 말들이 오고 갔다.


 통일 비용을 비롯하여 경제적 득실을 따지는 것은 당연했다. 나 역시도 통일에 관해 생각할 때는 어떤 부분이 이익이고 손해인지 돈 계산부터 하곤 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끔 만든다.


 황순원의 <학>은 1953년 5월에 발표된 소설이다. 이인행 서사로, 죽마고우였던 성삼과 덕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과거엔 단짝 친구였으나 현재는 적대적인 관계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성삼은 남한의 치안대 소속으로, 고향에서 포로가 되어 버린 덕재를 호송하게 된다. 덕재는 북한군이 조직한 농민동맹의 부위원장 직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 6.25 전쟁 중, 북한군 관련 조직에 속해 있다는 사실은 성삼이의 말대로 '총살감'이다.

 그러나 성삼이는 덕재를 호송하면서 자꾸만 과거를 회상한다. 고개를 넘고 마을을 벗어나는 길목마다 성삼이와 덕재의 추억이 서려 있기 때문이었다.

 성삼이 덕재를 신문하면서 얻은 정보는 단지 덕재가 무고하다는 것. 덕재는 빈농의 자식이면서 근농꾼이라는 이유로 농민동맹에 가입하게 되었고(당시 시대적 배경을 고려했을 때, 가입을 거부한다는 선택지는 없었을 것이다), 농사꾼이기에 농사일을 두고 떠날 수 없어 마을에 남아 있었을 뿐이다.

 그러던 중, 둘은 학떼를 발견한다. 어렸을 때, 성삼과 덕재는 죽을 위기에 처한 단정학 한 마리를 하늘로 날려 보낸 추억이 있다.


“얘, 우리 학 사냥 하구 가자.”

 성삼이는 학 사냥을 제안하고 이념과 조직을 뒤로한 채, 덕재를 놓아 준다. 이렇게 어릴 적 덕재와 학을 날려 보낸 때를 회상하며 덕재를 풀어주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성삼이의 “우리 학 사냥 하구 가자”라는 이 문장은 굉장히 감동적이다. 죽마고우가 나눴던 우정, 그 순수한 마음은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반공 이데올로기의 현실 논리가 지배하던 당시에 성삼이가 북한군 조직의 포로인 덕재를 죽마고우였다는 이유로 풀어준다는 설정은 자못 동화적이고 그래서 비현실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렇지만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극한의 대립도 성삼이와 덕재의 우정만큼은 갈라놓지 못하기를, 이런 아름다운 가치들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작가의 메시지는 전쟁의 위험성이 항시 도사리고 있는 우리에게 꼭 필요하지 않은가.


 반만년의 역사를 공유했다는 민족이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극한의 대립각을 세우고, 통일에 관한 한 경제적 득실을 우선적으로 따지며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쁜 현실이다.

 그러면서 남북한이 한 민족이기에 공유할 수 있는 동질감, 형제애와 같은 순수한 마음들이 점점 옅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그 옅어진 자리에 적개심과 혐오, 이해관계가 들어서고 있는 듯하여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저 친구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덕재의 올가미를 풀어 준 성삼이의 따뜻한 마음만이라도 남북한의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단정학'의 비상에서 새해 희망을 꿈꾸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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