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헤네시스
처음엔 이 동네가 싫었다.
한강 근처에 살아보고 싶었던 로망과 강아지 산책하기 좋은 곳이라는 2가지 이유로 작년 가을 한강 5분 거리에 위치한 망원동에 이사를 왔다. 이사 첫날 이삿짐을 옮기면서 데스커 책상을 1층에 20분 정도 두었는데 멀쩡한 책상을 분해해서 리어카에 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 동네 잘못 이사 왔다고 생각했다. 조금 지나니 건물은 방음도 잘 안되고 윗집은 파괴적인 성격의 아이들이 살고 가끔 알 수 없는 퀴퀴한 냄새가 동네 전체에 불어오기도 했다.
망원동의 2번째 가을은 만족스럽다.
강아지 덕분에 일주일에 5번 한강을 산책하고 한강이 보이는 농구코트에서 동네 사람들과 농구를 한다. 휴식일인 토요일에는 카페에 강아지 데리고 가서 책을 읽고 오기도 하고, 안 가본 골목 돌아다니다 보면 마음에 드는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기도 한다.(최근엔 망원정이 나의 힐링스팟이다.) 종종 책이나 노트북을 들고 가는 작은 바에서는 본업이 배우이신 바텐더님과도 친해졌다. 분재와 디제잉과 타투를 좋아하는 장발의 분재가게 사장님은 조만간 친해져 볼 예정이다. 날씨가 좋으면 사람이 많고 날씨가 좋지 않으면 평온한 동네이다. 러닝 하는 사람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은 건강한 동네이다.
이 동네를 헤네시스로 생각하기로 했다.
메이플스토리에 보면 사냥터가 있고 마을이 있다. 마을은 피가 깎일일도 없고 몬스터도 없다. 오로지 정비하고 힐링하고 NPC랑 농담 따먹기나 하는 휴식의 공간이다. 사냥터가 공덕동(회사)이라면 망원동은 쉬고 충전하는 마을, 헤네시스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동네를 더욱더 나의 휴식과 에너지 충전을 위해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좋아하는 가게와 장소도 많아질 필요가 있고 멋진 사장님들도 친해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Work & Life. 사냥터에서 Work, 마을에서도 Work 할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이제야 Work & Life 가 조화로워지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