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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의 나

시(詩)

by 구시안

조금 전의 나 - 구시안



인간적인 모든 것이
내 눈 속에 비친다


나는 눈이 아니라
금이 간 유리

사람들은 나를 통과하며
각자 다른 방향으로 부서진다


순박한 얼굴이 지나간다


나는 그것을 붙잡지 못하고
대신 그 잔상에 베인다


지혜로운 주름은
읽히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다른 시간의 문장이다


생각이 아니라
가느다란 금속이
혈관을 따라 이동한다


나는 안쪽에서 찔린다

소리 없이

강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손에 쥐자마자
부서진다


파편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내 안에 남는다


불의는
밖에 있지 않다

서 있는 동안
조금씩 기울어지는
이 몸의 각도

그것이 이미
어떤 실패다


바람이 없다


지하철


우리는 붙어 있다

서로를 밀어내며

서로에게 기대어

넘어지지 않기 위해
서로를 조금씩 무너뜨린다


나는 내 발을 느끼지 못한다
대신

타인의 무게를 느낀다


누군가의 호흡이
내 목 뒤에 닿고

나는 잠시
다른 사람으로 숨 쉰다


창문에 비친 것은
내가 아니다


나는
여러 개의 시선에 나뉘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용기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것은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일


부서진 채로
계속 남아 있는 일


문이 열린다

아무도 내리지 않고
아무도 타지 않는다


그런데도

조금 전의 나는
이미 여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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