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 OUT
IN & OUT
들어오고 나가다
가끔은 도시가 나를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들의 그림자가 층층이 내려앉아 하루의 끝과 밤의 시작이 뒤섞이면, 나는 그 흐린 경계에서 방향을 잃는다. 신호등이 잠시 멈추는 사이에도 사람들은 흘러가고, 나는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채 뒤에 서 있을 뿐이다.
무엇인가를 오래 붙잡고 산다는 것은 마음 한쪽에 고요한 안정이 스미는 일이면서, 동시에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을 키우는 일이기도 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이 도시의 숨결을 들이마시며 살아왔지만, 세월을 건너 사십 대가 된 지금도 이 도시의 실루엣은 낯설었다. 안정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이곳과 어울리지 않았다. 오랜만에 마신 소주는 오래 잠가 두었던 문을 천천히 열렸다. 뜨거운 체온과 함께 묵은 기억들이 깨어났다. 바람에 얼굴을 식히며, 어느 밤 의사의 권고를 밀쳐 두고 술을 마시던 순간이 떠올랐다. 살아가는 일의 의미가 흐려지고, 생각이 스스로를 잠식하던 때였다.
나쁜 일들은 이상하게도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찾아왔다. 몸 어딘가에 적신호가 켜지자, 손에 잡히던 것들도 모두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는 듯 들어왔다가 나가버리는 모든 감정들을 새겨보고 있는 중이다. 세상이 내 생각과 반대로만 움직이는 곳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자, 오히려 조금 편안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붙잡던 것들을 내려놓았을 때의 고요가 술 한 잔, 두 잔에 실려 더 깊어졌다. 서울은 언제나 지독하게 살아내야 하는 도시였다.
낡은 것은 사라져 가고, 새로운 화려한 것들로 변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더욱더 어두워지는 곳은 서울이었다. 십 대 때 느꼈던 그 감정이 수십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은 채, 술잔의 흔들림 속에서 다시 떠올랐다. 이 도시의 미래는 늘 짙은 그림자 같았다. 끊지 못하는 담배처럼, 고치라는 말을 흘려듣고 반대로 행동하는 청개구리처럼, 며칠 밤을 술과 일로 번갈아 채우며 살아냈다.
작은 누나와 들렀던 술집의 이름은 'in seoul'이라는 곳이었다. 서로의 마음을 천천히 건네며 술잔을 부딪쳤다. 테이블 위에 놓인 두 가지 안주는 어릴 적 듣기 싫던 어른들의 말처럼 조용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말들이 틀린 말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은 살아가며 기댈 곳을 찾는다. 그것이 누군가의 어깨일지, 오래 묵힌 한숨일지, 혹은 잔 속에서 잠시 깜빡이는 불빛일지 알 수 없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술에 취해 늘 하던 말이 있었다.
“이 세상 다 필요 없다. 이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문을 걸어 잠가도 방 안으로 스며들던 그 목소리가 오늘따라 이상하게 그립다. 그 말이 전부 틀린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사십 대가 되어 처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끔 아주 천천히 이런 마음이 찾아온다. 도시 밖으로 걸어 나가 보고 싶다는 마음. 아무도 내 속도를 재지 않는 곳에서, 저녁이 스스로 어둠을 준비하는 모습을 잠자코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이 부적 늘어가고 있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순간, 그 결이 도시의 공해와 먼지가 아니라 풀잎과 흙에서 일어난 것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왔다 나가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밤이 오면 불빛 대신 별이 하나둘 뜨는 곳에서, 조용히 앉아 내 마음의 모양을 다시 살펴보고 싶다는 도시를 떠나고 싶은 마음. 또 하나는 지겨우면서도 그동안의 해놓은 모든 것이 억울할 거 같아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이었다. 어쩌면 이 도시가 싫어서가 아니다. 그저 어느 순간 잃어버린 나 자신에게 다시 닿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순수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런 걱정 없이 언제든 들여다볼 수 있는 나 스스로의 시간이 허락되는 곳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창 밖으로 바라보는 도로의 차들은 서울을 들어오고 빠져나가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그들의 행선에 밝혀진 불빛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하루동안 마음에도 들어왔다가 나가는 수많은 감정들이 몰아 쉬는 숨 사이로 하얀 연기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살아가며 마음의 문을 들락날락 거리는 것은 많았다. 회사 사람도, 감정도, 기억도, 추억도, 생각도, 고민도. 마치 모든 것이 들어왔다가 나가기만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