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끼는 외로움에 대하여
기적은 거창한 폭발이 아니라, 한 사람의 존재가 마음에서 천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기적 같은 인연이라는 말은 점점 믿기 어려워진다. 사람을 만난다는 건 이제 거의 우연보다는 이미 계산되어 있는 방어에 가깝고, 서툰 기대는 상처로 이어지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아주 약하게, 거의 들리지 않는 숨결처럼 스쳐 지나가지만 분명히 흔적을 남기는 것이었다. 혹시 인연이라는 건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오래 비어 있던 자리에 천천히 내려앉는 햇빛 같은 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반차의 스케줄을 마무리하고 이른 퇴근길을 걷기로 결정했다. 좋아하는 카페에 가기 위해 나만의 지도를 열어 걸었다. 도착한 카페에는 사람이 없었다. 마당 한편에 앉아 주문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즐겼다. 아직은 겨울은 오지 않았다는 듯 내가 앉은 카페 마당으로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이 따뜻하고 좋아서 그 햇살을 마음껏 마셔버렸다. 이 나른함 속에 찾아드는 것은 이상하게도 그 따듯함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외로움이라는 것이었다.
인간의 외로움이란 인간을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는 경보음 같은 것이었다. 이 생존 신호는 늘 사람과 함께 해오며 많은 감정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생존을 위해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했던 존재. 그것이 사람이라는 존재이니 말이다. 나는 사람이다. 어쩔 수 없는 사람 말이다.
마침표를 찍어도, 그 점이 많아져도, 여전히 물음표인 사람이라는 존재에 나는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외로움은 무언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없어서 생기는 감정이었다. 외로움의 근원을 찾기 위한 여정이 삶이라는 이름이라고도 생각했다. 그 끝에도 답이 없는, 외로움이 그런 것이라면 굳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사람의 외로움이 무엇인지. 왜 이렇게 수많은 감정을 만드는지 말이다.
사람과 사람의 인연은 늘 예측할 수 없게 흐른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한때 사람을 멀리하면서 심리학 책에 미친 듯이 빠져 살았다. 내가 경험하고 던진 질문에 대한 딱히 시원한 답은 책 속에는 없었다. 시원하게 해결해 줄 나의 지독하게 오래된 궁금증에 답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외로움을 우연적 접촉의 축적, 정서적 동조, 관계의 임계점 같은 딱딱하고 어려운 단어로 설명했다. 정작 글로 보는 것들은 그 모든 개념이 하나의 서늘한 바람처럼 지나갈 뿐이었다. 외로움이 살아가며 울리는 경보음이라면 혼자서는 살아가기 힘든 게 역시나 인간이란 존재인가를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혼자를 선택했다. 어쩌면 나는 해답을 찾길 포기했던, 아니다. 나는 여전히 그 지겨운 답을 찾기 위해 오늘도 숨을 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느낀 외로움이라는 것은 결핍처럼 보이는 부재의 감각이 살아나는 것이었다. 그 감정들의 변화는 내가 살아가며 숨 쉬는 시간이 되면 달라지는 사계절과 닮아있었다. 외로움이라는 싸늘한 밭에서 시간 속에 수많은 다른 꽃들이 피고, 지고, 시들고를 반복했다. 이런 물음표가 생길 때마다 나는 홀로 걷기 시작한다는 걸 알았다. 무작정 걷는 길에 피어나는 것은 해답이 아닌 수많은 감정의 휘날림 들이었다.
언젠가 잃었던 심리학에서 정의하는 외로움이라는 것은 고립된 자아가 스스로를 볼 때 느끼는 통증이라고 설명했다. 어려운 말들로 가득했던 정의 나열들보다 오히려 이 한 줄이 마음에 와닿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런 통증을 느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 확인받지 못할 때 그 자아가 방향을 잃으며 생기는 것이 외로움이라고 했다. 한편으로 사람의 방황을 이야기하는 것인가로 이해했다. 여전히 외로움이라는 것은 무한한 미로에서 출구를 찾는 일처럼 느껴지고 있다. 외로움이라는 것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감정의 단어들이 매일 스쳐가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비슷하게 걸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상 속에 쓰고 있는 사람들의 가면 너머에도 모두가 느끼고 있는 통증이 공감되는 것이 외로움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돌이켜 보면, 어른들의 말씀은 하나 틀린 것이 없었다. 나 역시 어느덧 나이를 먹어가며 지난날에 들었던 어른들이 말씀하셨던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어쩌면 외로움은 성숙해질수록 인간은 불가피하게 더 고독해지는 것이라는 말이 현명한 답일지도 모른다.
외로움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른 색을 내고 있었다. 자신만의 가치관이 생기고 감정의 결이 나와는 달랐다. 어쩌면 다른 사람과 달라질 때, 어느 무리 안에 흡수될 수 없는 존재가 돼버리는 것이 외로움이 아닐까를 생각했다.
외로움이 느껴질 때마다, 머리와 마음은 교통정리가 필요했다. 살아가며 사람에게서 받는 외로움도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혹시 외로움이라는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 봤다. 어쩌면 사랑받고 싶고 모든 것에서 안전할 수 있는, 내게도 기적 같은 인연을 만날 수 있을까를 생각해 왔다.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외로울 수 있었다, 반대로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두 가지의 이유는 어느 정도 살아오며 겪고 느낀 것들이었다. 나는 여전히 혼자가 편안한 상태이다. 살아가며 우연이든 필연이든 만나게 되는 '관계의 양'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여전히 '관계의 질'을 우선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많거나 적은 숫자로 표시되는 인연에는 관심이 없어졌다. 사람을 많이 알아서 좋을 것은 없었다. 오히려 사람이 줄어들수록 많은 소리 또한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나는 좁고 깊은 관계를 원했다. 이왕이면 한 사람이어도 오래 볼 수 있고, 많은 이야기를 숨김없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타인의 시선이 사라진 공간에서 인간은 자신에게 가장 잔혹한 심판자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혼자라는 것은 잔혹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외로움으로 인해 찾아드는 자기혐오나 불안과 무가치 감로 이어질 때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이 성장해 가는 과정의 불가피한 그림자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 정도였다. 나의 검은 숲을 거니는 일은 이제 평범한 산책처럼 느껴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복잡한 감정들은 무의미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나 이 모든 감정이 말하는 것들을 잊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내가 이 글을 쓰면서 느끼고 있는 외로움이 가장 정직한 언어일지도 모른다. 나는 외로움이 인간의 숙명이라면 더 이상 답을 찾지 않기로 했지만, 그 감정들은 살아가며 기록해 놓는 것이 좋다는 마음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이라면 나뿐만이 아닌 사람이라는 존재라면 모두가 느끼는 것일 테니 말이다.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외로움이라는 것일 수도 있다.
설명할 수 없는 끌림, 말로 정리되지 않는 거리, 말할 수 없는 이별. 관계는 늘 이 세 가지 사이에서 천천히 흔들렸다. 우리는 누구와 가까워지고 누구와 멀어지는지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관계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아주 작은 요소에서 갈라졌다.
하루 동안 스쳐 지나간 짧은 시선, 의도 없이 건넨 말 한마디, 누군가의 무심한 친절. 심리학에서는 이를 미세한 사건들의 누적 효과라고 말하지만, 지금의 나는 언젠가 다가왔었을지도 모르는 인연을 밀어내며 이기적으로 혼자를 선택했으면서도, 나는 그것이 기적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다. 사람이란 얼마나 간사한가.
작고 사소해서 거의 느껴지지 않는 어떤 온기, 그게 반복되면 마음은 어느 순간 아주 조용하게 방향을 바꾼다. 인연은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큰일은 대체로 관계를 부러뜨리고, 작은 일만이 사람 사이를 묶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낯선 사람의 말투를 마음속에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건 상대의 목소리 크기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진심의 결' 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그 결이라는 것은 가느다란 실처럼 사람과 사람을 잊고 있다. 색은 다르고 그 두께가 다를 수도 있으나 전해지는 공감이라는 서로의 바느질은 늘 그 크기가 비슷한 두께로 바느질되었다.
가까운 사이가 무너지는 것도 거대한 폭발이 아니라 대수롭지 않은 무심함이 반복될 때다. 그래서 나는 가끔 생각한다. 기적 같은 인연이라는 건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내 인생을 바꿔놓는 게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내 주변을 맴돌던 어떤 호흡이 어느 날 문득 마음의 표면에 가닿는 순간을 말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 호흡이 느껴질 수도 자신도 모르게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것.
일상 속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관계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지극히 과학적이고, 또한 지극히 사람이라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사람과 사람은 서로의 삶에 아주 천천히 침투한다. 기대하지 않을 때, 애쓰지 않을 때, 마음의 문이 잠시 열려있는 그 틈으로. 인연을 맺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방어벽을 무너트리고 들어오는 사람이라는 존재는 시간 속에 기억 속에 지우고 싶어도 사라지지 않는 존재들로 남아 있다.
나는 사람이라 간사하게도, 가끔 기적 같은 인연을 기다린다. 이것이 솔직한 나의 모습이다. 그 바람이 헛된 기대일지라도, 그 기대 덕분에 흐지부지한 마음을 조금 더 단단히 견딜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변덕이 또 어떻게 달라 질지 모른다. 여전히 혼자를 선택했으면서도 오랜 기간 이렇게 지내왔음에도 여전히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
이런 감정이 외로움이라면 이 외로움이 영원해도 좋다는 생각을 고이 물들여 간직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