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을 버리고 나에게 남은 마지막 색
과거의 나는 수많은 색 사이에 살았다. 원단 위를 스치는 손끝은 늘 분주했고, 한 번도 쉼을 모르는 스펙트럼을 만들었다. 진홍, 감람, 회청, 모래 같은 색들이 나를 통과했고, 그 색들은 다시 내 손에서 새로운 이름과 숨을 얻어 태어났다. 옷은 나에게 작은 우주였다. 나는 그 우주의 신이 되길 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주는 점점 무너져 내렸다. 색은 어느 순간부터 선택이 아니라 소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색은 원단만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의 색이 더해져 갔다, 채워 넣는다는 건 도리어 내 마음을 잠식하는 일이었고, 그때서야 나는 깨달았다. 과함은 풍섬함이 아니라 감정의 과부하일 때가 더 많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이십 대와 삼십 대 중반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삼십 대의 중반을 넘어 사십 대의 후반을 달리고 있는 지금까지, 다시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스쳐가며 사는 요식업 세계에 자리해 있다. 기억되거나 기억되지 않는 색들이 여전히 엮어져서 만든 색을 잃은 원단들이 채워져 가고 있다. 그 색이 남겨주는 것은 너무나도 많았다. 내가 알지 못했던 수많은 단어들이 머리속에서 태어났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검정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로 다른 색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검정은 비워서 생기는 고요가 아니라, 오래 쌓인 것들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선택하는 마지막 방어막 같았다. 검정을 가까이할수록 마음이 편해졌다.
빛을 먹어버리는 색. 감정의 함량을 가늠할 수 없게 만드는 색.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가장 많은 말을 품고 있는 색. 나는 검은색 인간이 되었다.
사람들은 옷을 사며 말했다. 검정은 안전해서 선택하는 색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 검정은 안전이 아니라, 고백에 가까웠다. 누구에게도 쉽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감정의 결을 숨길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천. 과거의 모든 색을 견뎌낸 뒤에야 도착할 수 있는 침묵의 방에서 입어야 하는 색처럼 되어 갔다.
계절이 바뀌고 수많은 색들 중에 입을 만한 옷을 고르고 있었다. 역시나 손에 쥐어지는 것은 검은색이었다. 그 옷을 고르고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거울에 비친 나는 웃고 있었다. 그것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낯선 것이었다. 일상 속에 가면 속에 웃는 것이 아닌 가장 천진했던 과거의 나를 보는 듯한 순수한 것이었다.
너무 많은 것을 입고, 너무 많은 것을 말하고, 너무 많은 것을 견디며 산다. 결국은 다른 색들을 비워낸 자리에서 비로소 들리는 작은 속삭임이었다. 나를 솔직하게 바라보며 말하는 또 다른 나. 나의 속속들이를 다 알아보고 반응하는 바로 내면이라는 존재였다. 어쩌면 지금까지 나는 그 속삭임을 검정이라는 이름으로 간직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내 옷장에는 색이 비어 있다. 대신 마음의 여백이 조금 더 생겼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검정을 입을 것이다. 그건 어둠의 선택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가장 단순하고도 고요한 방식이 되어있을 뿐이다. 감정의 정리욕구가 불타오르고 있는 겨울이다. 과부하가 걸려 있는 마음에 들어온 색들을 정리 중이다. 내부의 감정이 너무 많을 때, 차라리 정돈됨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것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겪는 것인가를 생각했다. 색은 말이 많지만 검정은 말이 없다. 말이 없는 상태를 갖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나는 검은색을 상처를 감추는 색이라고 말한다. 밝은 색은 마음을 외부에 펼쳐 보이지만, 검정은 내부로 닫혀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나를 소모시키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선택이 검정일 수도 있다. 현실을 견디기 위한 지렛대 같은 색이 되어 있다. 아주 오랫동안.
검정은 모든 선택의 단순화를 가져다주었다. 더 이상 복잡할 필요가 없었다. 색에 민감했던 나로서는 최종 종착지가 검은색이 된 것이다. 삶이 복잡하거나 감정의 결이 산만할 때, 검정은 일종의 중심축이 되어주었다.
살아가며 바라보게 되는 다양한 색은 어쩌면 마음의 압력과 방향을 드러내는 가장 현실적인 상징일 수도 있다. 내가 살아가며 공부했던 패션이나 요식업 그리고 심리학 모두에서 검정은 비슷한 결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색으로도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 색이 단순하게 색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지난날의 역사 속 학자들의 나열은 필요가 없을 것이니 말이다. 사람은 그 모든 색을 갖고 있다. 복잡하고 다양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색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색들을 만들 수 있는 존재이다. 다만 사람은 그것을 감추는 색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검정은 넘칠 만큼 쌓였을 때 선택되는 색이다. 빛을 모두 흡수하듯, 감정도 그렇게 품고 버티려는 에너지의 상징처럼 여전히 나의 육체를 감싸고 있는 중이다. 슬픔과 애도, 혹은 끝과 종료 그곳에 검은색이 물드는 이유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보호하고 있는 검은색을 사랑한다. 색을 다루던 사람이 검정으로 도착하는 것은 생략의 미학을 감정의 절제를 나 스스로의 회복을 의미한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건 어둠의 선택이 아니다. 나를 지키는 가장 단순하고도 고요한 방식의 색일 뿐이다. 나는 검은색을 존중하고 사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