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에는 방공호가 없다

훤히 보이는 은폐와 엄폐. 이 지긋지긋한 감정노동

by 구시안


이 도시는 숨을 곳이 없다




낮게 깔린 빌딩의 그림자조차 제 역할을 잊은 채, 빛을 반사하며 나를 거울처럼 비춘다. 숨으려고 몸을 낮출수록, 오히려 선명하게 드러나는 기하학적 도시의 구조 속에서 나는 어쩐지 누군가에게 노출된 기분을 떨치지 못한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페르소나를 들고 걸어 다닌다. 모서리가 날카로운 가면을 얼굴에 붙인 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지하철의 흔들림을 견디고, 말을 상냥하게 다듬어 서로의 마음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조절한다. 하지만 정작 자기 마음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 마음이 누군가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그 순간부터 무너질 것 같은 불안이 이 도시의 벽보다 더 두껍게 사람들을 감싸고 있다.



내가 숨고 싶은 순간은 항상 사소하다. 카페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스치듯 지나갈 때, 회사에서 무심한 말 한 줄이 나를 벼랑에 세울 때, 엘리베이터 안의 침묵이 너무 완벽해 내 숨소리까지 과장되어 들려올 때, 나는 그때마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마치 방공호라도 찾는 것처럼 미약한 표정을 숨겼다. 그러나 이 도시엔 방공호가 없다. 방어기제라는 이름의 얇은 벽만 있을 뿐이다.



억압, 부정, 합리화. 내 마음속에서 만들어지는 그 구조물들은 도시의 콘크리트보다 더 정교하다. 그 안에서 울고, 웃고, 견뎌낸다. 누군가는 자신의 그림자를 보지 않으려고 더 밝은 척하며, 누군가는 내면의 균열을 숨기기 위해 침묵을 선택한다. 결국 사람들은 드러내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들키는 것을 두려워한다. 나 역시 이 지긋지긋한 감정노동에 절어 있다.



아침의 도시를 걷다 보면, 사람들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 파문처럼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그들은 모두 제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본적인 불안과 비교, 방어와 노출이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될 뿐이다. 사람들은 서로를 스쳐 지나가며 마치 서로를 보지 않는 듯하지만, 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다. 고프만이 말한 대로 모두가 무대 위 배우처럼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조심스럽게 살피는 것이다.



웃음은 가벼운 가면처럼 흔들리고 말투는 은근히 조율이 되고 있었다. 일상 속에 반복적인 행동과 제스처는 다를 것이 없었다. 일이라는 틀에서 맞춰놓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 매뉴얼처럼 변화 없는 일상 속의 무료함을 감추기에는 가장 좋은 매뉴얼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보이는 나라는 존재를 관리라도 할 모양인지. 말투와 표정과 속도 그리고 입에서 나오는 말의 양까지 모두 연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웃는 얼굴 뒤에는 여전히 긴장과 경계가 함께 숨 쉬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되지도 않는 은폐와 엄폐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의 감정의 방공호는 나에게 여전히 노출 상태였다. 그것이 더 불안을 만드는 일이었다.



도시에는 이 모든 것을 숨길 만한 방공호가 없다. 마음하나 숨길 만한 곳이 자리하지 않는다. 잠시 작은 골목길에서 마시는 커피 한 모금과 입에 물은 담배가 유일한 방패처럼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늘 먼저 깨어 있는 도시에는 모든 곳을 관찰하려는 듯 빛을 뿌리고 있었다. 시간은 잠시 후면 이 작은 골목에서 조차 나를 몰아낼 것이었다.



하루의 시작은 그런 것이었다. 이상한 중압감이 중력의 무게를 더해 무거워지는 몸과 마음을 확인하는 시간.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려 담배를 피웠다. 하얀 입김사이로 내면의 영혼이 뱉는 피로의 한숨까지 쏟아져 나왔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장면만 보겠다고, 기억하고 싶은 방식으로 기억하겠다고 스스로를 쇠뇌했다. 초조라는 역에서 출발한 여정은 시작되고 있었다. 안정이라는 역을 지나고, 경계라는 역을 지나고, 다음 역인 호기심역을 지나, 하루의 긴 터널을 지나야 나오는 피로역에 도착하면, 다시 경계의 역으로 돌아가기 위한 모든 순환선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내부는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었다.



도시는 우리가 서로를 너무 많이 보이게 만든 곳이 아닌가를 생각하며 걸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에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처럼 차가웠다. 너무 많은 정보, 너무 많은 표정, 너무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감정들. 그래서 더 깊이 숨어들고, 그러다 문득 드러나고 싶어 SNS에 사진 한 장을 올리고 감정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어쩌면 숨기려는 마음과 , 드러내고 싶은 마음 사이의 지독한 진자 운동이 아닐까도 생각했다. 어디에도 닿지 못하고 흔들리는 중간 지점에서 서로를 오해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또다시 하루를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이 도시의 진짜 방공호는 벽이 아니라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한 명에게라도 기꺼이 보여줄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이 있는 한 완전한 무방비 상태는 아니라고 말이다.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어디에도 숨지 못하고 걷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와 사라지는 나 사이에서 조용히 흔들리며 빛과 그림자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은폐와 엄폐도 못하고 있는 존재. 감정노동은 미소를 공업용 포장처럼 단단하게 만들고 억압은 깨진 유리잔 밑에 감춰진 물처럼 보이지 않지만 흔적을 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도시에는 없는 숨어 들어가고 싶은 방공호가 있다고 여전히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유리처럼 흘러나오는 시선들이 나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나는 어딘가로 몸을 숨기고 싶어진다. 어쩌면 몸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진실을 비켜가는 기술을 터득 중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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