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믿는 착각

연기처럼 흩어지는 시선

by 구시안




그것은 연기처럼 흩어지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눈에 벌어지는 일만 세계의 전부라고 착각한다. 내가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을 진짜라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착각일 수 있다.



아마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자주 빠지는 심리적 착각은, 너무 익숙해져서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 마음의 그림자들일 것이다. 사람은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으며, 마치 그것이 세계의 원래 모양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한 진실은 늘 말하지 않은 문장들 사이에 숨어있었다. 책장은 조용히 넘어가지만, 그 빈칸마다 서로의 심리와 감정이 연기처럼 스며 있다.



나는 늘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사실은 이미 마음속 어둡고 깊은 곳에 결론을 내려두고 그 결론을 증명해 줄 이야기만 골라 듣는다. 물결 위로 드러난 작은 조각들만 바라보며, 그 아래 잠긴 돌덩이에 대해서는 무심하게 등을 돌린다. 그것이 인간의 확신이라 믿으면서도, 사실은 그 확신이 가장 큰 착각임을 알지 못한 채 말이다. 쉬는 날 가방 한 가득 밀린 책들을 싸들고 노트북을 챙겨 스터디카페를 찾았다. 추운 날씨와는 다르게 카페의 따뜻함은 다른 것이었다. 햇살이 가득차 반짝이는 하얀 벽들 사이에는 낮인데도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여전히 일을 하고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 것에 스스로를 칭찬했던 것도 착각일지도 모른다.



차가워지는 날씨에 따뜻한 커피 한잔이 그렇게 좋았다. 마치 어느 누구도 매만져 주지 못하고 내 스스로도 위로 못했던 마음을 다독여주는 듯한 것이었다. 그 일상속에 소소함마져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물드는 밤이다. 어쩌면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고 있는 나를 경계해야할 계절이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종종 다른 사람도 나처럼 생각할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내가 살아가며 느꼈던 사람들. 그 마음의 온도는 제각각 다른 겨울 같은 것이었다. 서로 닿는 듯해도 언제나 어딘가 미세하게 어긋난 채 남았다. 표현되지 못한 감정과 이해받지 못한 마음들이 방 안의 찬공기처럼 가라앉아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결국은 각자의 그림자만 바라보며 조용히 하루를 넘기는 날이 많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지금의 감정은 이대로 오래갈 것이라 믿는다. 기쁨도 슬픔도, 마음 한가운데서 반짝이면 그것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강물의 결처럼 잠깐 스치고 흐르는 것들이었다. 목이 말라 걷다 만난 오아시스 같은 환상같은 것이었다.



마음의 물빛을 전체의 색이라고 착각하는 사이에 감정은 이미 다른 곳으로 흘러가 있었다. 나 조차도 가장 큰 착각을 여전히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나를 잘 안다고 믿고 있는 착각일 것이다.



매일 조금씩 다른 형태로 살아간다. 어제 이해했던 내가 오늘은 낯설어질 때도 있다. 오늘의 마음이 내일은 또 달라질 수도 있다. 자기 자신조차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채로, 흐르는 강물처럼 조금씩 변해가는 자신을 바라볼 뿐이다.



사람은 결국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 착각이 망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조심스레 누군가에게 다가가 위해 필요한 장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 ㅇ낳는 마음을 덜 오해하기 위해, 지겹고 지독한 경험을 통해 배워가고, 틀리고, 다시 이해하려 애쓴다. 그렇게 하루가 흐르고 또 한 사람의 내면이 조금씩 조용히 겹겹이 드러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착각은 늘 흩어지는 것이었다. 그것을 손으로 붙잡으려 해도, 그것이 안되면 마음에 담으려 해도, 모든 것은 결국 시간의 공기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착각은 내 안에서 조용히 자라나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잡으려 하면 잡을수록 이미 다른 형태로 흩어져 있었다.



보이는 것과 진짜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나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뿐이다.

착각은 나를 보호하기도 속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마음속 빈자리, 외로움과 두려움은 착각의 껍질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결코 오래 머물지 않는 것이 착각이었다. 언제나 흩어지고, 흘러가고, 남는 것은 오직 혼자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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