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죄와 벌 그림자 속 산책
인간의 죄는 대개 누군가의 비명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대신 마음속에서 작은 금이 가는 소리를 스스로 듣게 되는 것이었다. 내가 먼저 듣는 미세한 파열로 시작된다. 살아오며 지켜보았던 그 소리는 사람들 얼굴 위에 얇게 드리워진 비밀의 그림자 같은 것이었다. 말끝에 스치듯 묻어 있는 변명들과 매끈한 옷깃 아래 감춰둔 죄책감의 체온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길가에 버려진 종이컵 하나에도, 빛바랜 건물 벽에도 그 소리는 잔잔히 스며들고 있었다. 평온한 하루 같지만, 절대적 생명을 보장하지 못하는 세상을 살면서 버티기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여전히 쉬는 날이면 걷고 있는 삼청동에 드리워진 소리 안에는 무수한 작은 벌(罸)들이 흐르고 있었다.
인간이 만든 세계의 바닥을 비틀며 흘러가고 있다. 죄는 폭력보다 더 조용한 방식으로 자라고 있는 것이었다. 감정이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작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무시했다. 눈앞의 현실이 버거운 날에는 더더욱. 그러나 무시된 감정은 낡은 천처럼 곰팡이가 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둠은 그렇게 스며들었다. 발자국도 없이. 고통스러울수록, 내 안에서 벌을 만드는 장인은 열심히 일을 하는 듯했다. 살아가며 지은 죄는 무엇이기에 이렇게 고통스러울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했다.
죄는 타락의 문제가 아니라 지쳐버린 마음의 구조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사람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든 방어벽이, 어느 순간 타인을 향한 칼끝이 되어버리는 순간을 경험한다. 그때의 마음을 나는 이해했다. 나 역시 그런 칼끝을 품어 살아온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도. 사람의 관계에서도. 비수처럼 날아드는 칼날을 피하기 힘들 때가 있다.
죄책감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두 번째의 눈이라고 했다. 이상하게도 그 두 번째 눈은 자주 흐려진다. 일을 버티기 힘든 날엔, 사랑이 어긋난 날엔, 마음이 제 몸을 지탱하기도 벅찬 날엔, 그 두 번째의 눈은 사람을 놓쳐버리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 홀로 남은 그곳이 죄의 입구가 되었다.
도시를 걷다 보면, 건물 사이로 흐르는 바람보다 사람들의 숨결이 더 냉랭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서로의 상처를 모른 척 지나가는 눈빛, 작은 실수를 숨기기 위해 만들어낸 허세, 미움의 그림자를 밟고도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의 발끝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죄를 죄라고 부르지 않기 위해 온갖 심리적 구조물을 세웠다. 합리화. 투사. 회피. 마치 자신을 지키는 성벽처럼 시간 속에 더 높이 그 벽을 쌓아가고 있다. 죄는 결국, 정리하지 못한 감정의 더미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말이다.
나는 가끔 인간의 죄를 거대한 비극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인간적이어서 생겨나는 균열이라고 생각하며 산지가 오래됐다.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누군가를 조금씩 밀어내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누군가의 마음 한 조각을 외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람은 모두 조금씩 무너져 내려가며 시간 속에 나이를 먹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너진 자신의 성을 바라보게 될 날은 아무도 모른다. 무너짐이 남긴 형태의 잔해들이 얼마일지도 모르며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다. 당장의 내일을 모르는 인간의 운명은 잔인한 것 같지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떨칠 수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돌이켜보면 그 무너진 자리에서만 깊은 이해의 싹이 텄다. 상처를 가진 사람만이 남의 상처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죄를 지은 마음만이 타인의 죄를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죄책감은 인간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든다.
삼청동을 거닐다가 어느 갤러리 지붕 위에 자리한 현대판 피에타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켈란 젤로라는 거장의 바티칸 피에타와 닮아 있는 조각상이 하늘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고 시작은 늘 설레는 열정적인 순간일 것이다. 시작과 달리 마지막은 늘 어려운 것처럼, 이 예술가의 마지막 작품이란 자기 성찰의 과정을 끝맺는 순간이기에 미칠듯한 내면과 마주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신의 손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예술가. 그가 수년 동안 망설이며 미처 완성하지 못한 미스터리 한 돌덩어리를 하나 남겼다. 투박한 초벌 상태로 남겨진 채 미스터리 한 모습으로 남겨진 론다니니 피에타까지 그 조각을 위해 십 년이라는 스케치는 계속되어갔다. 이것을 조각할 때 미켈란 젤로의 나이는 칠십 대가 넘은 노인이었다. 그가 피렌체를 떠나고 로마로 이사한 후, 그는 다시는 피렌체에 돌아가지 않았다. 가족이 더 이상 그곳에 자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생 후반에 써 내려간 그의 시에서 그는 예술과 인생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다정한 환상을 가진 예술은 나의 우상이며 군주였다. 이제 나는 그것이 오류로 가득하다는 걸 안다."
어쩌면 인간이란 모두 그 틈을 안고 걷는 자들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그 틈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죄를 짓기도 하며, 씻을 수 없는 후회를 하는 존재. 너무나 쉽게 종이에 번지는 잉크처럼 자신만이 알고 있는 죄목들은 너무나 많을지도 모른다. 죄는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모양을 바꾸며 우리 안에 남아있을 뿐이다.
살아가며 갖게 된 그 흉터에 스며는 것들은 존재한다. 그 흉터를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세계가 조금 더 솔직해지고, 조금 더 덜 잔인해졌으면 하는 마음은 여전히 오랫동안 빗어 만들어 놓은 것이 쉽게 깨질 수도 있는 하나의 조각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물들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던 현대판 피에타상을 사진으로 남겼다.
늘 마음속의 어둠과 씨름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살면서 내가 저지른 죄와 형벌일 것이다. 그 어둠은 때로 고요하고, 때로는 일상 위에 내려앉아 숨 쉬는 공기마저 눌러버리는 날이 있다. 죄라는 것은 단순히 누군가에게 저지른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내면의 연약함, 마음 한구석에서 여전히 자라고 있는 이기심,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욕망들이 스스로에게 내린 형벌이기도 하다.
벌은 언제나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누군가는 타인의 비난으로, 누군가는 우연한 사건 속에서, 또 누군가는 자신의 양심 속에서, 인간의 죄와 벌은 외부의 법정이 아닌, 마음의 법정에서 가장 치밀하게 심판 될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죄를 안고 걷는다. 죄라는 단어가 입에서 나올 때, 그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몸 안에서 부서진 기억과 말없는 욕망, 그리고 스스로에게 내린 무수한 판단이 뒤썩인 소리 없는 폭풍이다. 누구도 그 죄의 무게를 재어볼 수 없고, 누구도 그것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길을 걷다가 밟은 낙엽 하나에도, 지나친 카페 유리창 너머 비친 나 자신의 그림자에도, 삼청동을 걷는 내내 죄는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의 가장 깊은 구석에서 계속 파문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죄책감은 무색하게도 계속되어 지어질 나의 죄는 무엇이 될지 생각해 보는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