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함이 말을 걸어오는 날

지루함 사이로 스며드는 변화의 욕망

by 구시안



커피를 좋아하다 보니, 하루에 몇 잔을 마셨는지조차 잊을 때가 있었다. 지금은 하루 두 잔 정도로 줄였지만. 문득 생각한다. 커피에 대한 갈망이 과연 생리적인 욕구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마시니 자연스레 따라 마시는 사회적 습관인지. 몸에 좋다고 알려진 것들에도 부작용이 존재하는데도 말이다. 커피가 뭐가 좋다고.



을지로에 필요한 물건을 사러 왔다가 마음에 드는 카페를 발견해 잠시 여유를 부려본다. 요즘은 노안이 온 것인지, 눈이 조금씩 침침해져 안경이 필수가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 주어진 시간을 써가며, 돈이 아닌 ‘나’라는 존재가 무엇을 쌓아왔는지 고민하며 살아간다. 시간 속에 쌓아온 기술이나 능력은 흐려질 때도 있지만, 아직은 사라지지 않은 취향과 태도가 있다.



시간 속에서 돈은 사라져도, 이런 것들은 어딘가에 남는다. 사춘기가 끝나갈 무렵, 나는 늘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른 무언가가 되고 싶어 했다. 그 시절 내가 진심을 쏟아부은 시간들은 지금도 어딘가 단단하게 남아 있다. 과거를 억지로 복원하려 애쓰지는 않는다. 대개 과거란 후회나 억울함을 들춰야 하는데, 그곳에 시간을 쓸 여유는 없었다. 한순간만 보면 억울하고 미칠 듯해 보이는 일도, 다른 시간에서 바라보면 나보다 나은 결과를 얻는 경우도 있었다.



니체의 ‘무구성’을 거창하게 논할 생각은 없다. 다만 시작하는 힘은 능동적인 힘의 표현일 뿐이며, 인생 자체가 결국 무구성이다. 우리는 스스로 저항과 반작용을 필요로 하며, 때때로 자기 자신을 부정 의한 존재로 판단하기도 한다. 인생은 늘 그러했고, 지금도 그렇다.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이 정해 놓은 관습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버티고, 스스로의 주장을 지키기 위해 애써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충동이란 결국 선택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선택의 갈래가 눈앞에 놓이면, 충동적이든 이성적이든 우리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가 비참하거나 아쉬울 수도 있고, 기대했던 미래의 땅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다시 다른 희망을 찾아, 삶의 가능한 여지를 향해 나아갈 뿐이다.



억울함이 무서운 이유는, 마치 미스터리 영화 속 대본처럼 ‘누군가는 진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또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회환의 언어가 다소 문학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며 느끼는 모든 감정이다.


언뜻 보면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람들은 결국 각자의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다.

누구에게 자리한 결핍은 이야기가 거리가 되기도 한다.
비극을 쓰든, 해피엔딩을 쓰든, 그 중간 어딘가에는 늘 작은 비극이 존재한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구시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자각(自覺). 나의 비릿한 언어가 향기로워질 때까지 낮과 밤을 걷기로 하다. 브런치 +154

897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42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641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4화나는 이방인이 되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