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와 나 사이를 떠도는 색들에 대하여
아무 말 없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오래전에 끝난 일인데도, 검은 먼지처럼 마음 안에 내려앉아 흩어지지 않는 기억들. 불편했고, 피하고 싶었고, 그럴수록 더 선명해진다. 내가 누군가에게 남긴 날카로움, 미처 다 말하지 못했던 다정함, 그래도 끝내 회색으로 번지며 남는 마지막 장면들. 그런 날이면 밤은 길어지고, 나는 텅 빈 극장 한가운데서 나만의 영화를 홀로 바라본다. 스크린 위의 빛은 늘 흑백이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온도 속에서, 나는 오래 앉아 있다.
가끔 생각한다. 그때 조금만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면 어땠을까.
사람들이 말하던 ‘밝은 길’이 아니라, 더 짙고 차가운 골목으로 스며들었다면. 경험해 보지 않은 어둠 속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지나고 나면 기회라고 부르고, 우연이라고 말하는 모든 갈림길 앞에서 나는 늘 한참 동안 멈춰 서 있었다. 아마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에서 검은 그림자가 오래 나를 살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그림자는 나를 밀어내지도, 당기지도 않으면서, 계속 내 뒤를 따라왔다.
요즘은 조용한 곳에 가 차를 마시고, 한참을 멍하니 있다 걷는다.
아무 대답도 없는 질문들을 마음속에서 반복한다. 누군가는 그만 생각하라고 말하지만, 나는 나를 끌어올 수 없다. 생각의 바다는 여전히 깊고, 나는 나이를 먹어도 그곳으로 다이빙한다. 많은 색깔이 사라진 자리에는 몇 가지의 무채색만 남았다. 그래서일까. 어떤 이에게는 내가 무거워 보일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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