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와 뿔의 밤

검은 숲의 도깨비와 요정의 잔혹 동화

by 구시안

모든 사랑은 조금씩 잔혹하다.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사라진다. 그러나 그 둘이 지나간 자리에서 언제나 새로운 숲이 자라난다. 도깨비의 빛의 장례식은 매일밤 계속되어 갔다.




1 - 기억의 숲



그는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도깨비였다. 몸은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오래전에 썩어 있었다. 밤마다 울리는 종소리처럼, 사라진 시간의 잔향이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는 자신이 누구였는지, 왜 이곳에 갇혀 있는지를 잊은 지 오래였다.



요정은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빛으로 태어났고, 빛으로 사라지는 존재였다. 그러나 어느 날, 자신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것은 낯설고도 따뜻한 형체였다. 그녀는 그 그림자를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도깨비가 있었다. 붉은 눈, 귓가에 남은 바람의 냄새, 무언가를 잃은 듯한 얼굴. 요정은 그를 보고 말했다. "당신은 왜 울고 있어요?" "울고 있는 게 아니다. 흘러내리는 것뿐이다. 나의 이름이." 그의 목소리는 부서진 유리처럼 차가웠고 그녀의 눈빛은 아침 이슬처럼 떨리고 있었다.



그날 이후, 요정의 빛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유를 몰랐다. 그저 도깨비가 있으는 곳으로 걸어가면 자신의 몸이 투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도깨비가 자신의 빛을 먹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그 사실이 싫지 않았다. 빛을 잃는 대신, 처음으로 따뜻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2- 불타는 날개



요정의 빛은 점점 희미해졌다. 그녀의 손끝, 머리카락, 숨결 속까지 도깨비가 스며들었다. 도깨비는 이제 빛을 삼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조각내어 자신 심장 안에 박아 넣고 있었다.



"멈춰요. 제발."

요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도깨비는 미소 지었다.

"멈출 수 없어. 너를 잃고 싶지 않거든."



그의 말은 사랑처럼 들렸지만, 실제로는 소유의 욕망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지만, 그 웃음 속에는 공포가 섞여 있었다. 요정의 날개가 갈라졌다. 하나씩. 부서지며 떨어지는 날개 조각마다 그녀의 빛이 조금씩 사라졌다.



요정은 새벽마다 피를 토하며 웃었다. 그 웃음은 유리처럼 깨져서 숲의 어둠 위에 흩어졌다. 도깨비는 그 조각을 주워, 심장 가까이 품었다. 그 빛이 그의 심장 안에서 뛰며, 그에게 살아있음을 상기시켰다.



요정은 아픔을 느꼈지만,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 빛이 없는 몸, 날개 없는 존재로 남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이상하게도 평온이 떠올랐다. 도깨비 안에서, 자신의 일부가 살아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도깨비가 점점 더 집착하며 빛을 끌어당기자, 요정의 몸은 희미한 연기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남아있던 요정의 날개는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속삭였다.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아...."



그러나 도깨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오직 자신의 심장을 비추고 있었다. 숲은 타오르듯 어둡게 흔들렸다. 그 불길 속에서, 사랑은 이미 잔혹이 되었고 두 존재는 서로를 죽이면서도 결코 떠날 수 없는 운명을 공유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정의 이름이 사라지자 도깨비는 오직 자신의 심장과 남은 어둠만을 남긴 채 조용히 숲 속을 걸었다. 그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사랑이 아닌 파괴로 인해 살아남은 증거일 뿐이었다.




3- 잔혹의 끝, 남겨진 심장




숲은 불타고 있었다. 그 불길 속에서 요정은 이미 사라졌고, 도깨비는 홀로 남았다. 손에는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빛조차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흩어져 버린 뒤였다. 그는 걸었다. 걸을수록 심장은 무겁게 뛰었다.

그가 삼킨 빛은 이제 자신의 심장을 태우고 있었다. 붉은 심장. 검은 심장. 모든 감각이 뒤엉킨 채 그를 살아있게 만들었다.



그 순간, 미세한 속삭임이 들렸다."여기서 끝나지 않아." 그 소리는 숲의 바람 타고 그의 귓가를 스쳤다. 요정의 잔여 빛일까. 아니면 그의 기억 속 잔영일까. 그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 안에는 고통뿐이었지만, 또한 이상하게도 따스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소리였다.



도깨비는 속삭였다. "이제... 다시 시작해야겠지." 그 말과 함께, 잿더미 속에서 새로운 빛이 어렴풋이 비쳤다. 그 빛은 요정의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난 것이었을까.



숲은 고요해졌다. 불꽃은 꺼졌고, 바람은 멈췄다. 그러나 그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잔혹 속에서도 여전히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 한 송이 같은 것이었다. 도깨비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다시 조용히 불타는 숲을 걸었다. 어둠 속에서. 빛의 잔해를 몸에 품은 채. 그의 눈동자 속에는 사랑과 파멸, 슬픔과 희망이 샘솓고 있었다. 순간 환한 빛이 스며들어 도깨비는 눈을 가리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 빛에서 나타난 것은 요정이었다.



"너는 왜 울어?" 요정이 물었다. "나는 너를 사랑해서 울지."도깨비가 대답했다. 그 대답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도깨비의 반복적인 대답은 잔혹했다. 요정은 날개를 떼어 도깨비의 등에 붙였다. "이제 너도 날 수 있을 거야." 그 말과 함께 요정의 몸은 다시 가루가 되어 얇은 빛을 뿌리며 흩어졌다.



도깨비는 울지 않았다. 대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개가 달렸지만, 그는 날 수 없었다. 그의 어깨 위에서 피가 말라갔다. 그 피가 별이 되어 떨어질 때 숲은 조용히 불탔다. 그날 이후 도깨비는 매일 밤 요정의 이름을 불렀다.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의 눈에서는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리 그 불꽃은 다시 숲을 태웠다.



그 숲의 재 위에서 다른 요정들이 태어났다. 그들은 빛이었고, 동시에 어둠이었다. 누군가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또 다른 잔혹한 동화였다. 밤은 늘 누군가의 장례식이었다. 빛이 죽을 때마다, 어둠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도깨비는 오래된 기억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요정은 아직도 자신이 살아 있다고 믿었다.



그들의 눈동자 속엔 한때 서로를 비추던 빛의 잔해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라진 온기의 흔적이었다. 매일 밤 도깨비의 빛의 장례식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전 06화베를린의 눈(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