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라는 카페에서, 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영화 같은 하루가 저물어 간다

by 구시안



밤의 끝자락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전, 문득 숨을 고르고 싶어 찾은 카페 ‘시카고’.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세상의 소음이 문밖으로 내려앉고, 나만의 고요가 밀려드는 느낌이 든다.



하루가 영화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집으로 올라가는 선상에 자리한 가끔 들리는 카페에 앉아 하루를 정리하고, 정신없는 일상 속에 틈틈이 써 놓았던 글들을 정리하고 싶어 노트북을 펼치고 앉아 사람이 없는 좋아하는 이 공간을 찾아 앉았다.



사람들의 숨들이 뒤 섞인 진공 포장 속 같은 하루가 마치 누군가가 써놓은 대본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막이 바뀌면 벌어질 일이 예상이라도 되는 듯. 마치 내가 용한 무당이라도 된 듯, 모든 장면이 그럴 것이다 예측을 하면 맞아떨어지는 순간을 경험했다. 이것이 무엇일까. 이 하루는 마치 스크린에 상영되는 누군가가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잘 편집된 영상처럼 느껴지는 이유를 찾고 있었다.



실내를 채운 따스한 조명 아래, 테이블 주변에 놓인 식물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내 발끝 가까이 자리 잡은 초록의 잎사귀들은 마치 오늘 하루 나를 대신해 숨 쉬어준 듯 조용히 그 자리에 서 있다. 가만히 바라보면 식물의 초록은 늘 같은 색을 하고 있지만, 마음이 지친 날엔 유난히 더 깊고 온화하게 느껴진다. 그 작은 생명들이 “괜찮아, 잠시 쉬었다 가도 돼” 하고 말해주는 듯하다.



한편에는 오래된 타자기가 놓여 있다. 철제의 묵직한 몸을 하고 있지만, 그 위에는 무수한 문장들이 치열하게 찍혀 나갔을 세월이 얇게 내려앉아 있다. 누군가의 결심, 누군가의 고백, 누군가의 기다림이 검은 금속 키 사이에 고요히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옆에 있던 손바닥보다 작은 장난감 타자기는 이상하게도 따뜻하다. 어쩌면 아직 세상이 버거운 이들에게 남아 있는 작고 순한 마음을 상징하는 것 같아서일지도 모른다. 타자기 두 개가 나란히 놓인 풍경은 마치 어린 마음과 어른의 마음이 한 자리에 앉아 서로를 달래는 모습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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