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알까?

큰 책방 속 닭장 속에서

by 구시안


류시화 작가님의 책 제목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게.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알까?

머릿속이 닭장 속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물들어 종로 큰 책방을 찾았다. 건져갈 것이 있는지 마음에 드는 종이 냄새를 찾아다니는 한 마리 개새끼처럼 단어의 향기를 맡으며 서점을 서성여 보았다. 주인님이 존재하지도 않아 그리 재촉하지 않고 있는 발걸음이 편안하게 물들고 있던 게 사실이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주말에 집에 있자니, 병신 같은 느낌이 떨어지질 않아서 선글라스를 끼고 비 오는 거리로 나섰다. 사람의 눈들을 마주하기 싫어서다. 비가 오건, 눈이 오건, 상관없다. 내 눈이 편한 가림막을 드리고 걷는 길은 온전히 혼자 걷는 느낌이라 좋다. 지난 밤 읽은 소설이 지저분하고 너저분하게 느껴져 환기가 필요했다.



느려터진 지하철을 기다리다 보니 눈이 내렸다.

사람들의 시선은 늘 호기심이 섞여 있거나, 나를 이상한 사람처럼 쳐다볼 뿐이었다. 비가 눈으로 바뀌어 내리는 날의 선글라스라. 그럴 수 있다. 나는 그 시선들을 신경 쓰지도 않지만 관심 없다. 좋아하는 작은 책방 사장님을 찾으러 나간 길이었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이상하게 상처받았다. 마치 연락을 끊은 애인이 잠수라도 탄것처럼 느껴졌다. 작은 책방에서 나는 종이냄새를 좋아하는 나는 매우 변태스럽게 변할 때가 있다. 패티시는 없지만, 그 오래된 책에서만 나는 향기가 좋다.



발걸음을 돌려 종로의 큰 책방에 들려 먹잇감을 찾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시선 아래로 걸린 건 류시화작가님의 책 제목이었다. 나는 사실 제목을 보고 책을 고르지 않는다. 두께를 보고 고른다. 적당한 두께. 적당한 무게가 실린 단어들이 가득 차 있는 책. 이왕이면 일상 속에 들고 다니기 좋을 만큼의 두께 말이다.



류시화작가님의 책 제목이 요새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것은 생각나지 않은 말이었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알까? 이 말이 정답이었다. 누가 누굴 평가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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