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보 이후의 시인, 혹은 남아 있는 자의 윤리

아르튀르 랭보와의 시간적 대화

by 구시안


아르튀르 랭보 이후에 시를 쓴다는 것은 단순히 시를 계속 쓴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한 번 완전히 무너진 가능성 위에서, 여전히 언어를 붙잡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을 전제로 한다. 랭보는 시를 가장 멀리 밀어붙인 시인이었다기보다, 시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점까지 인간을 데려간 시인이었다. 그는 시를 완성했고, 그래서 떠났다. 남아 있는 자들은 그 이후의 잔해 속에서 글을 쓴다.



랭보에게 시는 구원의 장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시를 통해 구원이라는 개념 자체를 붕괴시켰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에서 랭보는 신, 사랑, 도덕, 심지어 시적 사명까지 차례로 고발한다. 그에게 언어는 머무는 집이 아니라 불을 붙이고 나와야 할 공간이었다. 시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세계와의 불화를 끝까지 밀어붙이기 위한 실험이었다. 그리고 그 실험이 끝났을 때, 그는 더 이상 시인이 아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랭보의 ‘천재성’이 아니라 그의 퇴장이다.

랭보는 시가 인간을 구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가장 극단적으로 증명한 인물이다. 그 이후의 시인들은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알면서도 쓰는 사람들이다. 글쓰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언어에는 랭보식의 감각 착란이나 폭발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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