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할 권리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는 말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잊지 말라는 문장은 윤리처럼 반복되고, 기억은 책임이자 의무가 된다. 역사를 기억하라, 상처를 기억하라, 약속을 기억하라. 그렇게 우리는 기억을 쌓아 올리며 살아간다. 그러나 아무도 묻지 않는다. 기억으로 인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때도 있는가라고.
망각은 늘 부정적인 단어였다.
배신, 회피, 무책임, 혹은 나약함의 다른 이름.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생각하게 되었다. 기억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살아낼 수 있는 삶도 존재하지 않는가. 모든 기억이 진실하다고 해서, 모든 진실이 반드시 견뎌야 할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기억은 너무 무겁다.
그것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끊임없이 침식한다. 한 번의 실패가 인생 전체를 규정하고, 한 사람의 말이 내면의 목소리가 되어 되풀이된다. 기억은 시간을 통과해 왔지만, 감정은 그 자리에 머문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끝난 일을 아직도 살고 있다.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기억 위에 세워진 존재다.
그러나 그 기억이 과잉될 때, 자아는 굳어버린다. 변화할 수 없다는 믿음, 다시 시작할 수 없다는 확신. 망각은 이 굳어짐에 생기는 작은 균열이다. 그것은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파괴가 아니라, 숨 쉴 틈을 만드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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