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이라는 이름의 조용한 폭력
우리는 매일 판단한다.
숨 쉬듯 자연스럽게, 때로는 무심하게. 이 사람은 믿을 만한가, 저 선택은 옳은가, 이 말은 해도 되는가. 판단은 인간의 생존을 가능케 한 능력이자, 동시에 인간을 가장 위험하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내리는 판단이 언제나 ‘나’에게만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판단이 남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사실.
사람의 입은 꿰매기 힘든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우리가 가진 입이라는 것은 남을 판단하기 좋아해서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세상에는 즐비하다. 어떤 판단은 파문처럼 번져 타인의 삶 깊숙한 곳까지 닿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을 자주 잊은 채 살아간다.
판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세계를 재단하는 하나의 칼날이다. 그 칼날은 종종 말이 되어 상대에게 전달되고, 제도와 규칙이 되어 구조 속에 박힌다. 교사의 한마디 평가는 한 아이의 자존감을 수십 년 동안 규정할 수 있고, 상사의 결정 하나는 한 가정의 내일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 법정에서의 판결, 병원에서의 진단, 면접장에서의 짧은 인상. 이 모든 것은 누군가의 인생을 새로운 궤도로 밀어 넣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말한다. “나는 그저 내 역할을 했을 뿐이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저’라는 말은 책임을 가볍게 만드는 가장 편리한 단어다.
판단을 내리는 순간, 우리는 이미 관계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판단은 중립적이지 않다. 그것은 항상 특정한 가치관, 경험, 편견, 그리고 시대의 공기를 머금는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을 타인은 살아왔을 수 있고, 내가 당연하게 여긴 것을 타인은 평생 넘지 못할 벽으로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시야가 세계의 전부인 양 착각한다.
철학은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경고해 왔다.
칸트는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고 말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판단에는 덕이 필요하다고 했다. 덕이란 단순한 선의가 아니라, 상황의 복잡성을 견뎌내는 성숙함이다. 즉, 판단을 유보할 줄 아는 용기, 알지 못함을 인정하는 겸허함, 그리고 말과 결정의 무게를 감당하려는 책임감이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 덕을 연습하고 있는가.
현대 사회는 판단을 가속한다.
SNS의 ‘좋아요’와 ‘비난’은 순식간에 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거나 파멸로 몰아넣는다. 맥락은 사라지고, 문장 하나가 인생의 요약본이 된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클릭 몇 번으로 재단하면서도, 그 판단이 남긴 상처에는 좀처럼 책임지지 않는다.
익명성은 판단을 가볍게 만들고, 가벼운 판단은 잔인해진다.
그렇다고 판단을 포기할 수는 없다. 판단하지 않는 삶은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판단의 ‘태도’다.
나는 지금 누구의 삶에 손을 대고 있는가. 이 결정이 남길 흔적을 나는 상상해 보았는가. 혹시 나의 편안함을 위해 타인의 가능성을 조기에 봉인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 판단은 폭력이 아니라 책임으로 변한다.어쩌면 성숙한 인간이란, 자신의 판단이 타인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쉽게 말하지 않고, 쉽게 결정하지 않으며, 쉽게 단정하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늘 한 박자 늦게 말하고, 한 번 더 생각하며, 필요하다면 침묵을 선택한다.
침묵은 무책임이 아니라, 때로는 가장 윤리적인 판단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인생에 조연으로 등장한다.
스쳐 지나간 말 한마디, 표정 하나, 결정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오랜 독백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 사실만은 기억해야 한다.
나의 판단은 나의 것이지만, 그 결과는 결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인식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마지막 경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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