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만 무료

감정 고문

시(詩)

by 구시안


3d7fc08d337209906a044b5ed07a96fa.jpg


감정 고문 - 구시안



나는 묶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빠져나갈 수 없다
의자는 없고
자세만 남아
하루 종일 같은 방향으로
내 안을 향한다



여기서는 신문도 질문도 없다
대신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
다른 얼굴로
다시 들어온다



빠져나갈 틈 없이

기억은 물이 아니라
금속이다
천천히 식어
형태를 갖추고
심장 안쪽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시간은
손을 쓰지 않는다
그저
간격을 조절한다



고통과 고통 사이를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기쁨은 증거물처럼
한쪽에 놓여 있고
슬픔은
끝까지 설명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러나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가장 오래 남는다



나는 나에게서
도망치지 않는다
도망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대로 남아
끝까지 견딘다



여기서는
비명이 필요 없다
소리 없이도
충분히 파괴할 수 있으니까



침묵이
가장 정확한 도구다

이 고문은

언젠가 끝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그것을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만
조용히 확인할 뿐이다



나는 아직
부서지지 않았다
그 사실 하나로
오늘은
형벌을 연기한다







keyword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brunch membership
구시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말하지 못한 감정과 쉽게 합의된 문장들 사이를 기록합니다. 빠른 공감보다 오래 남는 문장을 쓰고자 합니다. 내면을 중요시 여기며 글을 씁니다. 브런치 53일째 거주중입니다.

439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287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298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25화이름 없는 돌처럼 내 안에 가라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