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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글을 쓰는 작가

마법과 현실의 차이

by 구시안

시인의 혀로 왕을 죽인 사건은 존재했다.

글은 주문을 건다는 말과 같다는 생각이 물들고 있다. 사람들을 현혹해서 조회수나 얻고 좋아요나 얻는 광고쟁이는 하고 싶지 않다.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정확하게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나는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글이라는 것이 예술활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쓴 책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의식을 바꿔놓기도 하기 때문이다. 글 하나가 독자의 현실을 조작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무서운 일이 되기도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현실을 사는 나 자신을 위해 기록하는 일이다.

과거와 현실과 미래를 생각하는 출발선에 놓인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은 사실 누구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었다. 시시한 모든 것이 싫었다. 시간에 흘러가게 두는 모든 것이 아까웠다. 말을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선택지는 글쓰기였다. 나는 여전히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의 작가가 아니다. 그렇게 될 필요도 없다.

글은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 써지기 시작하면 솔직하지 못하며 진실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데 필요한 건 자기 자신뿐이다.

속도감 전 키보드도. 탁월한 언어도 필요 없다. 오로지 자신과 대화를 시작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것은 깊은 밤. 사람들에게 멀어져 홀로 남겨진 곳에서 시작된다. 밝을 수도 있는 공간. 어두울 수도 있는 공간에서 말이다.



훌륭한 자신만의 소리를 내고 싶다면 그 악기부터 조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거의 반백년을 살아가고 있다. 인생의 반. 여전히 훌륭한 인간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하지 않는다. 그저 나 자신이 올바르게 서기 위해 공부를 할 뿐이다. 내가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이 쓴 글이라도 공감할 수 있는 마음 하나를 챙겨가고 싶었다. 그것은 어렵고 힘든 것이란 걸 여전히 느끼고 있다. 모두가 다른 성격과 선택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 안에서 견뎌내는 것은 힘든 일이다.



글쓰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정치 속이나,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역겨운 인간들을 보면서 '왜 저럴까'를 생각하면서도 그 역겨운 인간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왜 그렇게 살아가야 했는지. 어떻게 저런 사상을 갖고 대중에게 나서게 되었는지. 저 사람의 환경이었다면 나 역시 저렇게 역겨워졌을지를 말이다.



비판이 아닌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면 더 진솔한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경지는 아직 멀었다.

여전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지난 일기장의 글들을 읽어보면,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잡다하게 덕지덕지 붙어있는 감정의 단어들보다 여백이 많아져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내가 겪고 내 눈으로 보았던 나만이 볼 수 있는 것은 밝은 쪽보다 어두운 쪽이었다. 여전히 나는 내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을 쓰고 있다.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

나의 자아를 완성해 가는 것이 글쓰기라는 생각을 지난 세월에 써 내려갔던 일기장 하나하나를 정리하면서 물들고 있었다. 한 때는 글이 돈이 될 수 있는 직업이 작가라면 그것이 되고 싶었다. 차가운 다락방에서 얼어 죽으며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실의 작가들을 시간이 지나 만나게 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글쓰기를 직업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너무나 힘이 든 '직군'이라는 것을 말이다. 세상 쉬운 일은 없다지만, 감정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마법을 부릴 힘은 있으나. 그들의 마법을 부릴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의 선택을 받는 마법사가 되는 일은 현실에서는 불가능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돈. 과학. 현실. 물리적인 사실들을 공부하는 일이 작가에게 도움이 될까를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글자는 글자로써 남아 있을 때 가장 현실을 잘 반영한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글쓰기는 그런 것이다. 꿈을 갖고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해서 될 수 있는 확률이 가장 작은 현실이라는 공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자신의 주머니의 차고 넘쳐나는 자신만의 어휘가 있다면 도전해 볼 만한 일이고,

그것은 큰 무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주머니에 돈이 차고 넘쳐 있다면, 그런 작가는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명예와 부를 위해 쓰는 글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나의 생각이라도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니라면, 가차 없이 베어버릴 수 있는 분별력이 갖고 싶을 뿐이다. 이것도 욕심이라면 욕심이다. 나는 그것이 갖고 싶다. 감정의 밤 써 내려간 글을 스스로 만족하고도 시간이 지나 바라본 그 글을 이성적으로 난도질 할 수 없다면 나는 이미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글을 쓰건, 과거에서 나온 인물이건, 현재에서 나온 인물이건, 그 인물 찢어 죽일 인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해도 작가는 그 인물을 사랑해야 한다. 중요한 건 내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남들보다 없다는 데 있다. 나는 사랑이 따뜻하거나 자랑할만한 일이 아니라고 여전히 냉소적인 인간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밝은 것을 쓸 수가 없고, 그런 작가가 될 수도 없다. 그것을 썼다면 그 글은 거짓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며 운 좋게 만나 인연이 된 유명인에 삶에도 소주를 기울일 때면 똑같은 슬픔이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는 그들의 삶도 그랬다. 사람은 다르다지만, 다르지 않은 공통점이 나는 '연민과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그 비슷한 결들 속에 자신의 것을 찾아가며 써 내려가고 쓰는 것이 글쓰기였다.



달콤한 것만 마시고 싶지 않았다.

독한 것을 원하지 않아도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은 쓴 맛과 독한 냄새의 독극물 같은 것들이었다.

그 안의 향기를 지우고 싶은 마음도 없다.



돈과 지휘와 감성을 잘 지휘하는 작가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이면의 그림자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지내 왔는지. 어떤 사람들과 있었는지. 그들이 겪은 것은 무엇인지. 지금의 화려함을 보고 그들처럼 되고 싶은 마음으로 작가가 되고 싶다면 그 꿈은 접는 것이 좋다. 자기 계발서처럼 누군가의 삶처럼 그들을 따라 산다고 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이 타인의 삶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데 더 특출한 아이디어라는 것은 없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는 이유로 덧대지는 횡설수설한 글은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원고 쓰레기 더미를 만들고 싶은 생각도 없다.



가장 단순하게 작용한 진정한 마음 하나가 빛나는 글을 만들기도 한다.

그것은 아주 소박한 상처의 그늘에서 시작할지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어 읽게 만드는 글들은 세상에 존재한다. 여전히 나는 글쓰기를 하고 있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의 뼈대가 없다면 무슨 글 쓰는 게 소용일까. 작가라는 말도 과분하다.

아무리 여러 살을 붙여도 이상할 것이다.



여전히 나는 광대처럼 살고 싶지 않다.

내가 일하는 공간. 일상 속의 나. 어느 밤 속의 나. 여전히 나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글을 쓰고 있다.

그래서 나는 작가가 아니다. 스스로 생존하려 감정의 노예에서 벗어나려 애쓰며 쓰는 글은 누군가에게 시시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여전히 내게는 중요한 것이 되어있다. 그것은 언젠가 조금 더 자유로운 고요와 평화를 내게 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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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못한 감정과 쉽게 합의된 문장들 사이를 기록합니다. 빠른 공감보다 오래 남는 문장을 쓰고자 합니다. 내면을 중요시 여기며 글을 씁니다. 브런치 61일째 거주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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