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울고 웃는 이유는 생각보다 조용한 곳에서 시작된다
사람은 흔히 마음으로 느낀다고 말한다.
“가슴이 먹먹하다”, “심장이 설렌다”, “마음이 무너진다”, "불행하다", "행복하다" 그러나 그 모든 표현의 실제 무대는, 고요하고 어두운 두개골 안쪽,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뇌라는 공간에서 시작된다.
뇌는 차갑고 논리적인 기관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세상에서 가장 예민한 감정의 정원이 숨어 있다.
편도체는 작은 경보 장치처럼 두려움을 감지하고, 해마는 기억이라는 이름의 서랍에 사랑과 상처를 함께 보관한다.
전전두엽은 늘 고민한다.
“이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도 될까?” 하고. 감정은 결코 즉흥적이지 않다.
눈물이 흐르기까지, 가슴이 저릴 만큼 아프기까지, 뇌 속에서는 수많은 전기 신호와 화학 물질이 마치 시를 쓰듯 정교하게 오간다.
세로토닌은 우리를 부드럽게 달래고, 도파민은 기대라는 이름의 불꽃을 튀긴다.
노르에피네프린은 심장을 두드리며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라고.” 우리가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하루를 망치고, 스쳐 지나간 풍경에 이유 없이 울컥하는 이유는 뇌가 늘 과거와 현재를 겹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지금의 장면 위에, 어릴 적의 기억,
지나간 사랑, 말하지 못한 후회가 투명한 필름처럼 포개진다. 그래서 감정은 종종 과장되고, 때로는 이유 없이 무겁다.
관자놀이에서부터 깊이 5cm쯤에 자리한 해마는 불안해하는 당신을 위해 사람을 찾게 만든다.
엄청난 양의 기억을 담고 기록하기를 좋아하는 이 해마는 많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과거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중요한 기관이다. 당신이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했는지 영화처럼 서사를 기록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해마는 자연지능의 핵심이다.
인공지능이 못하는 유일한 일을 하는 곳이 우리가 갖고 있는 해마라는 것이다. 당신이 경험한 모든 것을 부여잡고 있는 곳이다. 해마는 혼자 있기 싫어서. 즐겁게 보내고 싶어서. 늘 사람을 찾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는 뇌에 이용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뇌라는 기관이 시스템은 사람을 어떻게든 살아가게 만들어 준다. 해마는 가장 손상되기 쉬운 영역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곳이 나는 해마라고 생각하고 있다. 당신은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가? 그럼 다행이다. 이미 당신은 이 해마를 위해 건강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도대체 내 머리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를 생각하며 시작했던 호기심이었다.
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읽어 대던 수많은 서적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양의 많은 단어들이 쏟아졌다. 그만큼 방대하고 우리의 모든 것을 관리하는 뇌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여전히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뇌에 관련된 서적들로 인해 소설과 시만 읽어 대던 나의 독서 습관에 심리와 철학이 자동으로 따라왔다.
이와아키 히토시(岩明均)의 만화 「기생수」가 생각났다.
단순한 괴물 만화를 넘어 인간성과 생존, 윤리를 집요하게 파고든 일본 만화사에서 손꼽히는 문제작이자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만화가 사람의 뇌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감정을 주관하는 뇌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데 1도 관심이 없는 기관이다.
뇌는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괴롭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 불완전함이야말로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드는 증거라고. 어쩌면 뇌는 우리를 괴롭히는 기관이다. 뇌라는 것은 오로지 생존본능에만 반응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다.
행복하자. 아무리 되뇌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 듯 말해도 행복 지지 않는다.
불행해라. 아무리 저주를 걸어봐도 절대 불행지지 않는다.
뇌는 그런 긍정 따위에 관심이 없다. 뇌는 오로지 당신이 지금 느끼는 모든 것에 대응하는 것은 두가지 뿐이다. 극복과 생존. 두 가지 만을 생각하며 반응한다.
감정을 주관하는 뇌는 늘 완벽한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괜히 상처받고, 쓸데없이 걱정하고, 이미 끝난 일을 수백 번 되짚는다. 그러나 그 덕분에 우리는
시를 쓰고, 음악을 듣고, 타인의 아픔 앞에서 멈춰 설 수 있다.
뇌는 오늘도 우리 몰래 감정을 조율한다.
너무 무너지지 않도록, 그러나 완전히 무뎌지지도 않도록. 이성이라는 손과 감성이라는 손을 동시에 잡고
아슬아슬한 줄 위를 걷게 한다.
혹시 오늘 이유 없이 마음이 복잡하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내 뇌가 열심히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감정은 결함이 아니다.
그것은 뇌가 우리에게 허락한 가장 인간적인 특권이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