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과 노출 사이
인간에게는 이상한 본능이 하나 있다.
먹을 것이 부족할수록 사진을 찍고, 마음이 허기질수록 말을 늘어놓는 본능이다. 배가 부르면 조용해지고, 삶이 괜찮아질수록 굳이 설명하지 않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불안할수록 사람은 무언가를 나누고 싶어 한다. 꼭 필요한 정보라기보다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 오늘 먹은 것, 오늘 느낀 감정, 오늘의 사소한 분노와 웃음.
이걸 고상하게 부르면 소통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확인이다.
“나 여기 있다”는 신호를 서로에게 보내는 일. 커트 보네거트라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아니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동물이라고. 그래서 말한다. 그래서 공유한다. 그래서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도 설명한다.
이 노출과 확인에는 내향적 성격과 외향적인 성격과는 아무 상관없다.
내향적이든. 외향적이든. 누구가에게 무언가를 타인에게 노출하고 확인하는 과정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누구나 그것을 원하는 세상이다.
나는 열쇠를 내 자신이 갖고 있으려고 노력한다.
마음을 열 수 있는 그 열쇠를 타인에 절대 주지 않는다. 아무리 페르조나가 난무하고, 나 역시 일상 속에서 숨막히는 사람들 속에 살아 가면서 가면을 쓰고 있을 지언정. 혼자만의 시간을 기다리는 그 지루한 노동의 시간을 나는 즐기려 노력한다. 사람을 찾을 수록 의존성은 높아진다. 그것이 얼마나 살아가며 중요한 시점이 되고, 얼마나 괜찮은 선택이었는지를 되새겨 봐야한다. 누군가와 공유하고 노출을 어디까지 할 것인가. 그리고 그 확인이 무엇으로 자신에게 되돌아 올 것인가. 그것은 가볍지 않은 선택이 되어야 한다. 무거워야 한다.
공유는 선의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불안에서 시작된다. 나만 이렇게 느끼는 건 아닐까, 나만 이렇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내가 뭔가 크게 잘못 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이 만큼을 사람들에게 보여줬을 때 그것이 확신이 아닌 불안으로 온다면 시작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질문들. 사람들은 대답을 듣기보다 고개 끄덕임을 원한다. “나도 그래.” 이 짧은 문장 하나면, 하루는 조금 덜 무너지기 때문에 반복되는 공유.
그래서 인터넷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떠다닌다.
깊이 고민한 철학도 있고, 3분 만에 쓴 감정도 있다. 둘 다 같은 이유로 존재한다. 혼자 두기엔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공유는 책임을 나누는 방식이다. 완전히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잠시 공중에 띄워두는 행위. 누군가 읽어주기만 해도, 그 감정은 잠깐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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