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졌다가 짧아지는 것들
미용실 의자에 앉아 거울을 본다. 거울 속에는 내가 있고, 내가 아닌 것이 함께 있다. 익숙한 얼굴인데, 오래 바라보면 조금씩 낯설어진다. 이 얼굴이 지금의 나인지, 조금 전의 나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미용사는 내 뒤에 서 있고,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기로 선택한 몸처럼.
늘 그랬던 것처럼, 나는 스스로 머리를 깎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해왔던 짓이다. 한 순간의 실수로 삐딱하게 쥐가 파먹은 거 같은 두피가 드러난 자리를 바라봤다. 순간의 엇나감. 도저히 수습이 안될 것 같아. 깊어가는 밤 미용실 행을 결정하고. 이왕이면 그 미용사가 하루 일과에 지쳐 말이 없는 날이길 바랐다. 여전히 일상 속의 소음이 이명처럼 귓가에 윙윙거리고 있었다. 이미 한도초과. 더 이상 들어줄 이야기는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가운이 어깨 위에 놓인다. 천의 무게가 생각보다 크다. 보호를 위해 덮인 것인데, 가끔은 가두는 역할을 한다. 팔이 자유롭지 않고, 손은 무릎 위에 얌전히 올라가 있다. 이 자세는 결정을 맡긴 사람의 자세다. 말로 하지 않는 동의가 이미 끝난 상태. 역시나 예상과는 달리 미용사의 말은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이 분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긍정의 힘? 그것은 여전히 믿기 힘든 일이지만, 아주 가끔 보게 되는 이 미용사 분은 여전히 밤이 깊어가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순수하다고 느껴질 만큼의 가식이 없는 힘.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힘에 잠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머리카락이 잘려나간다. 소리는 크지 않다. 그러나 분명하다. 가위가 닫히는 순간마다, 아주 작은 단절이 생긴다. 바닥에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본다. 방금 전까지 나의 일부였던 것들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바닥에 놓인다. 붙어 있을 때는 의미가 있었고, 떨어지는 순간 의미를 잃는다. 의미는 늘 이렇게 이동한다.
거울을 통해 잘려나가는 과정을 본다. 직접 보지 않아도 되는데, 시선은 자꾸 그쪽으로 간다.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려는 습관처럼. 머리카락은 저항하지 않는다. 묻지 않고, 이유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 태도가 조금 부럽다. 사람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들 중에는, 너무 쉽게 떠나는 것들이 있다.
미용사는 묻는다.
" 괜찮으신가요? 짧은 스타일이 잘 어울리세요. 어쩜! 눈 색깔이 그러세요? 갈색인가. 회색인가. 어머어머."
긍정의 힘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정확해지고 있었다. 밝음. 그 밝음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를 생각한다.
미용사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처럼. 그 속도만큼 따라오는 모든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고개를 끄덕이는 쪽이 더 정확하다. 그럴 때가 있다. 말은 언제나 조금 과장되지만, 몸의 반응은 대체로 정직하다. 괜찮다는 말속에는 늘 설명이 섞이지만, 끄덕임에는 그런 것이 없다.
머리카락이 어깨를 스친다. 떨어지기 직전의 순간, 아주 잠깐 몸에 남는다. 그 짧은 접촉이 유난히 선명하다. 사라지기 직전의 것들은 늘 또렷하다. 사람도, 시간도, 관계도 그렇다. 완전히 떠난 뒤보다, 떠나기 직전에 더 많은 흔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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