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리듬

사라진 이후의 박자

by 구시안

사람들은 많고, 공기는 움직이지 않는다. 쇼핑몰 안의 공기는 항상 조금 늦다. 바깥에서 들어온 숨들이 천장에 걸린 채 내려오지 못한다. 유리 난간에 기대 선 사람들의 어깨 위로, 에스컬레이터의 금속 소리가 반복된다. 위로 올라가는 소리와 내려오는 소리가 서로를 지우지 못한 채 겹치고 있었다.


배꼽시계가 사람들에게 알람을 울리는 시간이 되면, 어디선가 숨어있다가 나타나는 사람들은 무리를 이루고 기다림을 시작한다. 그 정확한 시계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계속되는 행렬에 짙은 노동으로 물든 사람들의 입에서는 단내의 탄식이 흐르기 시작했다.


"인내하라. 그러면 연명할 것이다." 이런 문구라도 주홍글씨처럼 새겨 놓은 걸까. 참으로 잘 들 버티며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는 모습들이 작은 리듬을 만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여기서는 시간이 물건처럼 진열되어 있다. 정해진 시간, 남은 시간, 아직 시작되지 않은 시간. 시계는 많지만,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초침은 움직이는데, 시간은 이동하는 느낌은 없다. 나는 이곳에 도착했고, 떠날 수 있는 시각도 이미 정해져 있다. 그 사이의 시간은 내 것이 아니다. 맡겨진 상태에 가깝다. 그것을 견디는 시간이 찾아왔다. 마치 고행의 길처럼. 애도의 물결처럼. 지지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 자신뿐.


사람들의 얼굴을 본다. 대부분은 목적지를 알고 있다. 누군가는 계산대를 향해 걷고, 지구상에서 자기 아이가 가장 이쁘고 아름답다를 외치는 어미의 완강한 손은 아이의 얇은 손을 끌고 앉아, 입안에 가득 일용한 양식을 넣어주며 웃고 있고, 누군가는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본 채 멈춰 서 있다. 멈춰 있는 사람들조차 흐름의 일부처럼. 이곳에서는 정지도 이동의 한 방식인 것이다.


숨이 막히는 것은 공기 때문만은 아니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반복될수록, 몸은 더 이곳에 붙잡힌다.

이런 생각을 하며 웃으며 인사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복화술사처럼 느껴진다. 시간은 이렇게 뻔뻔하게 사람을 만들어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게 되었다.


벗어나고 싶은 욕구는 늘 이곳에서 가장 또렷해진다. 그러나 욕구에는 출구가 없다. 출구는 직원 전용 통로 뒤쪽에 있고, 그 통로는 지금 사용할 수 없다. 일을 해야 한다. 주말에 땀을 흘리니 평일의 이틀을 쉴 수 있다. 그것으로 위안을 삼자 다짐한다.


그 문장은 짧고 단단하다.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일은 기다리지 않는다. 일이 있는 동안, 다른 감정들은 자리를 비운다. 갑갑함도, 답답함도 정확히 말할 수 없는 상태로 밀려나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아닌 거 같다. 다만 몸 안 어딘가에 남아, 계속 모스신호 같은 것을 보내고 있었다. 어떠한 리듬처럼.


가끔 바깥의 날씨를 상상했다. 지금쯤 바람이 불고 있을지도 모른다. 빛이 움직이고, 그림자가 생겼다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곳의 빛은 늘 같은 각도로 떨어진다. 그림자는 생기지 않는다. 모든 것이 고르게 밝혀진 공간에서는, 무엇도 분명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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