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마음을 기억하며
반으로 접힌 통지표에는 머리가 반쯤 벗어진 담임 선생님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단정하고 예의 바르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차분하고 조용함. 피아노에 소질이 있음. 글짓기를 잘함. 읽기를 잘함. 아이가 늘 무표정함.
국민학교라고 불리던 시절. 12살. 마지막 겨울 방학이 시작할 때였다.
피아노가 배우고 싶었다. 그것을 치고 있는 사람을 화면에서 보았을 때 느껴지는 전율이 아직도 남아 있다.
가난했다는 이유로 배울 수 없는 것을 탓하지는 않았다. 반에 잘사는 친구 몇몇이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다.
오르간이라고 불릴만한 것이 늘 교실에 자리하고 있었기에. 그 친구들의 손가락을 보고 위치를 파악하고 따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배우면 된다고.
큰 누나와 작은 누나는 내가 3학년이 되는 해 같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이미 중학교에 올라갔다. 누나들과 같이 다니는 학교 생활이 든든했다. 누군가와 싸우고 있으면 누나들은 그 상대아이의 머리와 얼굴을 사정없이 가격했다. 동생을 지킨다는 의지였을까. 충분했는데. 혼자서도.
배우고 싶은 것들은 점점 많아지고, 점점 키도 훌쩍 커갔다.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을 만큼 커갔다. 급식으로 하얀 우유가 나오던 시절이라 늘 친구들의 것을 뺏어 먹거나, 자기는 하얀 우유를 못 먹다는 어이없는 녀석들의 우유까지 흡수하고 난 뒤였다.
다락방의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도 나는 추위보다는 더위가 싫다.
종합장라는 이름이 써진 스프링이 달린 노트에 배우고 싶은 것들을 적어갔다.
그리고 그것을 할 줄 아는 친구를 괴롭혔다. 가르쳐달라고.
1989년의 담임 선생님은 굉장한 사람이었다.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 그렇게 되고 싶었다. 선생님이라는 것이. 그래서 꿈을 적는 희망란에 늘 미래의 꿈은 선생님이라는 꿈을 적었다. 그것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모르고 말이다.
6학년이 되기 전 겨울방학 시작 전 선생님은 너는 글 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북한과 가까운 곳까지 가서 어느 시골 학교 앞마당에 모여 앉아 벌이던 백일장이 기억난다.
혜화동 흥사단이라는 곳을 통해 전국에서 모여든 학생들과 함께 백일장을 갔었다. 학교 대표로. 그렇게 나비라는 글짓기로 대상을 받고 난 뒤였다. 선생님이라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뭐든 잘해야 한다고 했다. 공부도 운동도. 근데 뜬금없이 나의 꿈과는 상관없이 담임선생님은 글을 쓰라고 했다. 나는 싫다고 했다. 선생님이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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