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수 있으나. 보지 않기로 한 사람처럼
나비는 태양을 본다. 사람이 보는 눈부신 원으로서가 아니라. 하늘에 번지는 밝음의 방향으로. 수천 개의 작은 눈으로. 빛의 세기를 느끼고 움직임을 읽으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안다
태양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길을 알려주는 표식.
나비는 빛을 기억하며 날고 그 밝음에 맞춰 날개의 각도를 조정한다. 또 나비의 눈에는 사람에게 없는 색.
자외선의 흔적이 있어 꽃잎 위에 숨은 길과 꿀의 약속을 읽어낸다. 그래서 나비는 태양을 본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보는 일이라기보다 이해하는 일에 가깝다.
빛을 따라 세상을 건너는 법을 아는 존재. 나비의 눈처럼 볼 수 있다면. 저 눈부신 햇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시시한 관찰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얌전한 아이는 아니었던 나는 그렇게 태양을 똑바로 보고 싶었다.
신비로운 나비의 눈처럼.
이제는 보기 힘든 나비는 도시에 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 세상에 잘못 들어온 나비에게는 다행인 일인지도 모르겠다. 곤충이나 동물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날아드는 나비를 보는 뒷동산에서 잠자리채를 집어던지고 꽃잎에 앉아 있는 하얀 나비를 맨 손으로 잡고 다녔다. 가엽다는 생각보다.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호기심이 감정을 이겨버리던 시절이었기에. 그렇게 살짝 나비를 만졌다. 얼굴을 들이대고 바라보는 나비는 너무나 신기했다. 특히 그 눈이 신기해서 계속 관찰을 하는 시간이 길었다.
충분히 보고 나서 나는 플라스틱 채집통에서 나비를 털어내 다시 하늘로 보내주었다. 그때 당시에는 호랑나비도 있었다. 줄무늬가 선명하여 더 호기심을 자극했던 하늘을 나는 얇은 호랑이의 가죽 같은 것이 신기해서.
그 어릴 적 코스모스도 피어있고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있는 동산은 무너지고 갈려져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하기 전까지. 하루 종일 잡아들이던 나비들을 따라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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