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베일이 춤추던 밤

버티는 사람에 대한 기록

by 구시안

나는 밤새 잠 못 들고 어두운 밖을 내다보며 누워 있었다. 갑자기 어둠이 하얀 그림자로 채워진 것처럼 보였다. 흰 베일이 겹치고 풀어지며 흐느적거렸다. 무슨 춤처럼.


어둠 속에서 유기적으로 어떤 다른 차원이 생긴 것처럼. 흰 베일을 두르고 춤을 추고 있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여전했다. 열렬하게 춤을 추는 춤사위가 보통이 아니었다. 춤은 거대하고 서로 겹쳤다 풀어지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밤이 오고 흰 물체가 밖으로 빠져나갈 때까지. 나는 잠을 못 들고 누워만 있었다.


밤새 열어 놓았던 창가에 흔들리는 것은 하얀 커튼이었다. 가로등에 비친 그 흰 베일을 쓴 존재는.

그 밤 이후. 나는 그 열렬한 춤사위를 볼 수 없었다. 창문을 늘 닫혀 있었으니까.




회사를 갈 생각을 하니 역겨워지기 시작했다.

잠실의 쇼핑몰에 들어갈 생각을 하니 이미 사람들의 냄새로 방안은 가득 차 있었다. 상상만으로도 답답함을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아직 만난 적 없는 사람들과 하루 종일 작업을 해야 한다. 내가 왜 현장을 드나들기를 자청했을까. 가만히 책상머리에 앉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긴 좀이 쑤셨을 것이다.

나는 역맛살이 있는 사람이니까.


경직된 얼굴을 풀어주려 괄사로 얼굴 전체를 밀어준다. 그리고 주문을 외운다.

나는 개운하다.

너무 잘 잤다.

좋은 아침이다.

개소리의 향연이 마치 주술처럼 돼버릴 때가 있어서. 나는 불면의 밤을 보내고 난 후. 아침이면 습관처럼 이 주문을 외운다. 그럼 거짓말 같지만. 잘 잔 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스트레스 과다복용이 몇 해째 계속되던 어느 날. 이 커다란 몸집도 쓰러질 수 있구나를 경험했다.

그리고 일이라는 것이 사람을 말려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드시 해내야 하는 작업들이 줄을 서 있었다. 매장은 늘어갔고. 오픈 날짜는 다가오고. 사람은 모자라고. 현장의 스트레스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회사라는 구조안에는 나를 치유해 줄 자는 없었다. 1분마저도 연봉으로 계산질을 해대는 회사라는 존재는 여전히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몇 일간의 병원 신세를 지고 나서 고혈압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순간의 심장이 펌프질을 하는 것이다. 머리는 터질 듯 아프고 심장을 벌렁거리는데 그것이 회사가 준 불치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회사는 좀 쉬면 괜찮아진다며 안심시켰다. 괜찮을 리가 없었다. 이미 회사라는 곳이 적처럼 느껴지기 시작할 때였다. 그런데 왜 나는 버티는지를 생각했다. 그만두어도 뭐라 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그렇게 8년이 지나고 9년이 다가오던 해. 내 슬픔을 치유할 사람은 오로지 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이를 악물었을 때 모든 것이 변해갔다. 회사에서는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게 되었다. 정상적인 영업. 사고 없는 매장. 친절한 매장. 음식이 맛있는 매장. 위생적이고 편안한 매장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대표는 욕심을 부리며 또 매장을 내자고 했다. 나는 그 욕심을 막을 이유가 없었다. 원하는 만큼의 매장을 내게 되었을 때. 나는 이미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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