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두리가 없는 원 안에서

시간의 선이 끊어진 날의 기록. 시 한편과 함께

by 구시안

나는 테두리가 없는 거대한 원안에 산다.

마치 지루하고 광활한 평원처럼. 이전에 흘러가는 시간이 선이었다면.

지금은 둥그런 공 같은 것이 나를 감싸고 있다.

시간에 대한 모든 흐름이 단절되면 내 앞에는 공허함만이 남는다.


'만일'이라는 질문에 끌려 다니지 않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매번 반려되는 도전은 계속한다.

이 분노는 무디고 한계를 모르니까.




추위를 피해 들어선 카페의 창문은 마치 대성당처럼 아치가 있고 높았다. 하얗고 성스러워 무릎을 꿇고 기도라도 해야 할 거 같은 분위기였지만. 나는 종교가 없고. 기도 따위는 하지 않는다.


창문은 햇살을 받고. 교통은 소란하고, 어딜 보든 사람과 개가 함께 지나다니고, 한쪽에는 수십대의 자전가가 방치되어 있었다. 덜그럭거리는 가방에서 지갑을 찾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카운터의 점원 눈초리가 기다리기 싫다는 듯 점점 매서워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검은색이라 낮에도 가방 안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가방 안에는 빈 조개껍질들이 한가득인 것처럼 느껴졌다. 뭐가 이렇게 들어 있는지.


서로를 지탱하며 좋아하는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연인이 부럽지 않았다. 추워서 저렇게 안고 있는 것이겠지 하고 말아 버린다. 어디를 앉을까를 고민하다가 가장 싫어하는 창가자리에 앉아 뜨거운 커피 한잔을 손에 쥐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런치타임을 끝내니 공명도 감정도 없다.




눈을 아래로 돌려 길바닥을 바라본다. 아스팔트의 작은 얼룩을 본다. 육신은 납처럼. 돌처럼 무겁다.

팔과 다리에 어떤 고통이 있는지를 확인하려 잠시 주무른다. 그리고 눈이 타들어 갈 거 같은 겨울의 태양을 잠시 바라보다 만다.


황량한 평온을 헤매다 나온 사람처럼. 아니면 내면과 외면 사이의 문지방에 앉아 잠시 진을 치고 앉아 있는 것처럼. 주위는 작은 소리에도 공명하는 얇은 막으로 되어 있었다. 그렇게 쉬는 시간의 짧은 여정은 끝나고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고 소리가 다 들렸다. 외투가 바스락거리고.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었다. 잠시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뭐 어쩌라고. 옷이 걸려 의자가 긁힌 것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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