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의심해온 시간에 대하여
의심은 늘 나중에 온다. 기록이 끝난 뒤, 손이 식고 나서야.
의심은 자신이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말한다.
나는 그 태도를 믿지 않는다.
기록은 빠르다.
몸이 먼저 알고, 문장은 뒤따라온다. 의미는 항상 늦게 도착한다.
그래서 나는 의미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한때 나는 질문을 너무 많이 했다.
왜 이 문장인가,
왜 지금인가,
왜 하필 나인가.
왜 이런 걸 쓰는가.
질문은 매우 정확했지만, 그 정확함이 나를 움직이지는 못했다.
의심은 사치다. 시간이 넉넉한 사람만이 자기 자신을 반복해서 심문할 수 있다.
지금은 그런 시간이 아니다. 지금은 아침의 빛이 어디에 닿았는지, 커피가 식기 전 무슨 생각이 스쳤는지,
말하지 않은 문장이 어디서 숨을 쉬는지. 그런 것들을 적어두는 시기다.
기록은 판단하지 않는다. 좋고 나쁨을 묻지 않는다. 단지 있었음을 인정할 뿐이다.
그 태도가 나를 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물드는 밤이다. 나는 완성된 사람이 아니고 완성될 계획도 없다.
다만 오늘의 나를 오늘의 문장으로 남길 뿐이다.
의심은 나중에 와도 된다. 충분히 늦어도 된다.
기록이 쌓인 뒤에야 의심은 비로소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 지금은 쓰는 것이다. 어느 날은 미친 듯 이. 어느 날은 깊은 생각으로 잠겨 천천히.
설명하지 않고, 증명하지 않고, 변호하지 않으면서. 의심보다 기록이 먼저인 시기이므로.
두 권의 책을 읽어 내가는 밤. 다른 나라에 살았을 이 작가의 영혼을 느껴보고 있었다.
다른 색. 다른 피부. 다른 환경. 나와는 다른 삶. 그리고 다른 경험. 나는 그 이유에 책을 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나와는 다른 사람이 쓴 책이라는것을 말이다.
감정은 확인 시켜주지 않으면 곪기 때문에. 작가의 글 속에 숨어 있는 삶에 녹아 있는 감정을 들여다보며.
나와 비슷한 감정을 확인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가장 고요하게 그 감정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책은 화를 내지 않으니까. 그 고요한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글을 쓰며 밥을 먹고 사는 선배가 이런 말을 했었다.
" 시안아. 너는 스스로에게 의심을 많이 하는 편이니? "
바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인생의 반을 살아가고 있는 시점에서 내가 이렇게 느리고, 고민하게 되는 질문 따위는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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