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실 끝에서 흔들리는 존재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이다. 늘 곁에 있고, 가장 흔하게 마주치는 존재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예측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장 정확히 알고 있다고 믿는 순간, 가장 큰 착각에 빠지는 존재 또한 사람이다. 세상에 뿌려진 현자들의 공식을 더해도, 답을 찾아도, 결국 어딘가에서 오류를 낸다. 마치 복잡한 미분 방정식처럼, 사람이라는 문제는 언제나 또 다른 변수를 만들어낸다.
그 변수의 이름은 ‘감정’이다.
나는 가끔씩 영화 <엑스맨> 속 ‘프로페서 X’를 떠올린다. 사람의 생각을 읽고, 연결된 마음들을 조율하는 초능력자. 그의 힘은 지구의 모든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강력했지만, 정작 그는 늘 외로웠다. 모든 마음을 읽을 수 있기에, 그는 누구와도 온전히 함께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웃고 있는 얼굴 뒤의 불편한 진심을 알고, 다정한 말속에 감춰진 칼끝을 느끼며 그들과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어쩌면 그 마음을 모르는 게 다행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다.
커피 머신의 작은 불빛이 밤을 비춘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공기청정기가 숨 쉬는 소리, 그 틈새로 겨울의 공기가 방 안으로 스며든다. 차가운 창문에 이마를 대면, 바깥의 풍경이 묘하게 일그러진다. 창밖에는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을 머금은 눈송이들이 공중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조용히 땅으로 내려앉는다. 어디에도 부딪히지 않고, 아무런 저항도 없이 내려앉는 그 모습이, 문득 사람의 마음 같았다. 하루 동안 쌓인 감정이 소리 없이 마음 한구석에 내려앉는 밤. 그 속에서 나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무게를 다시 생각한다.
누군가의 '마리오네트'가 되어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모르는 사이, 보이지 않는 실에 매달린 채 흔들리고 있다. 그 실은 때로는 사회의 시선이고, 때로는 관계의 기대이며, 어쩔 때는 스스로의 두려움이다. 누군가를 지배하고 싶다는 욕망 또한 그 실의 연장선일지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이 중심이 되어 세상을 움직이고 싶어 한다. 왕이 되거나, 여왕이 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그 꿈의 끝은 언제나 쓸쓸하다. 만약 내가 누군가의 생각을 완벽히 읽고, 그를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세상은 정교한 인형극처럼 조용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진실이 없다. 움직임은 있지만 마음이 없고, 대화는 있지만 온기가 없다. 그곳에서 나는 주인공일지 몰라도, 결국 ‘인간’이 아닌 단 하나의 인형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차라리 상대의 마음을 모른 채 살아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 무지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사람으로 남는다. 때로는 상처받고, 때로는 오해하며, 그래서 결국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사람은 늘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려 애쓴다. 하지만 어쩌면, 그 둘의 경계는 눈송이처럼 녹아 사라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증명하려 애쓸수록, 우리는 점점 더 진실에서 멀어진다. 문득 이런 상상을 한다. 서로의 얼굴을 모른 채, 보이지 않는 환기구 너머로만 대화하는 세상. 그곳에서는 표정으로 진심을 판단할 필요도, 눈빛으로 거짓을 찾아낼 이유도 없다. 그저 ‘말’ 그 자체로 사람의 마음이 전해지는 세상.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없다.
보아야 믿고, 믿는 순간 의심하며, 의심하면서도 여전히 사랑한다. 그것이 사람이다.
결국, 사람은 사람 때문에 아프고, 사람 때문에 성장하며, 사람 때문에 살아간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는 언제나 사람이다. 어떤 학자의 공식도, 지식으로 가득한 논문도 이 문제를 풀어줄 수 없다. 문제는 늘 새롭게 태어나고, 비슷해 보여도 언제나 다른 답을 낸다. 정답이라고 믿는 순간, 빨간 대각선이 그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새로운 문제를 품은 채 살아간다. 때로는 틀린 답을 써내며, 때로는 아무 답도 쓰지 못한 채,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하얀 세상이 차갑게 식어가는 밤, 나는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언젠가 미술관에서 찍어두웠던 사진 한 장을 보며 생각한다. 수많은 인간의 형태를 한, 서로가 다른 나무 조각들이 실에 매달려 있었다. 마치 한 마을의 사람들을 통째로 잡아드린 악마가, 마을 사람들의 영혼을 빨아 마시고 남겨진 딱딱하게 굳어버린 사람들의 모습 같았다. 그 전리품은 그의 방안에 걸려 작은 바람에도 움직이는 인형이 된 것처럼, 천장에 걸려 가느다란 실에 매달려 있는 그 작품이 내겐 마리오네트와 흡사하게 보였다. 깎아진 나무와 빚어진 지점토로 만들어진 마리오네트. 하얀 천장에 수백 개의 인간들이 그렇게 가느다란 실에 매달려 있었다.
‘사람’이란 존재는 결국 누군가의 손끝에 매달려 흔들리면서도, 끝내 스스로의 실을 끊어내려 애쓰는 인형이 아닐까. 그 실이 끊어지는 순간, 비로소 사람은 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마리오네트의 슬픔을 이해하게 된다. 그것이 사람이라는 존재가 품은 가장 고요하고, 가장 깊은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