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빠른 것의 텅 빈 중심
나는 속도를 본 적이 없다.
다만 그것이 지나간 자리의 열기를 만져 보았을 뿐이다.
공기가 미세하게 갈라진 틈,
신호등이 바뀌기 직전의 팽팽한 정적,
가속이 남기고 간 잔향 속에서만
속도는 어렴풋이 감각된다.
속도는 발을 갖지 않는다.
그것은 다리로 달리지 않고,
심장에 기생한다.
혈관을 도로처럼 사용하며
맥박의 간격을 조금씩 좁혀 간다.
나는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속도가 나를 통과해
어딘가 더 먼 지점으로 빠져나갈 뿐이다.
남는 것은 어지러운 현기증과
도착 이후의 공허뿐이다.
도시의 교차로 한복판에서
초록 불이 켜지기 직전의 그 찰나,
사람들의 종아리를 붙잡는 긴장 속에서
이미 출발은 시작되어 있다.
눈동자에는 현재가 아니라
현재 다음의 장면이 떠오른다.
지금은 견디기 어려운 얇은 막처럼
쉽게 찢기고,
도착은 늘 예고편처럼 소비된다.
나는 속도를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정지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정지 속에서는
어디로도 향하지 않는 숨이 들리고,
설명되지 않은 감정이
천천히 표면으로 떠오른다.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해
나는 더 빠른 화면을 밀어 올리고,
더 긴 문장을 탐하고,
더 즉각적인 대답을 갈망한다.
속도의 순수한 모방.
그것은 엔진의 문제가 아니라 욕망의 복제다.
누군가 나보다 먼저 앞질러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나의 박자는 흔들린다.
나는 타인의 리듬을 흉내 내고,
타인의 호흡을 빌려 달리려 한다.
내 심장은 여전히 같은 간격으로 뛰고 있는데도
의식은 그 박동을 밀어 올리며
스스로를 재촉한다.
가장 빠른 자는 어디에 머무는가.
도착은 잠시뿐이고
곧 더 먼 지점이 발명된다.
속도는 목적지를 소비하며
자신의 공허를 유지하는 신과도 같다.
계속해서 앞을 가리키지만
끝내 붙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저녁이 되어
해가 건물의 벽을 길게 핥고 지나갈 때,
그 그림자가 천천히 늘어지는 장면 속에서
다른 질서가 드러난다.
느림은 패배가 아니라 밀도이고,
정지는 공백이 아니라 깊이다.
심장은 일정한 박자로만 뛸 수 있고,
숨은 깊이 들이마실 때 가장 멀리 닿는다.
이 육체는 가속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반복과 호흡을 위해 단단히 엮여 있다.
속도를 흉내 내는 동안
나는 점점 나로부터 멀어진다.
그러나 발을 멈추고
내 안에서 울리는 고유한 박동을 들을 때,
앞질러질 필요도, 앞지르려 할 이유도 사라진다.
두 발을 이 자리에 놓고 서 있는 감각,
그 단단한 현재.
그것만이 모방할 수 없는 속도이며,
끝내 흉내 낼 수 없는 나의 리듬이다.
나는 이것을 ‘자기만족’이라 부르게 되었다.
* 자기만족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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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안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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