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기로 한 날의 기록
토대를 이루는 풀 바위 위에 수많은 집이 생겨났다.
어쩌면 내가 서 있는 곳이 미역을 감고 있던 바다였을지도 모른다.
이런 나날의 이미지.
우연히 마주친 거리의 행인들이 지닌 투명함.
집요한 추적 끝에 뿜어져 나오는 순결한 입술을
무거운 마음으로 눌러버리는 나의 고정관념.
육체의 피로,
열정의 혼돈,
단어의 태도.
나는 그토록 불완전한 악덕과 미덕 사이를 걷고 있다.
낙담한 얼굴이 웃고 있다.
그것은 슬픔이라는 아름다운 얼굴이다.
완전히 비참하지는 않다는 것을
미소로 알리고 있는
거울 속의 모습이 기묘하다.
내 앞의 폭풍우가 무너지고
기어오르던 식물들은 몸을 펴 꽃을 피운다.
마치 하나의 신호처럼
신비롭게 꽃을 터뜨리는 계절의 감동을 바라보다가
완연한 아침을 기다리며
침묵이 우울의 한가운데 있는 늪지를
계속 짓누르고 있을 때
그것들은 이미 내 앞에서 피어 있었다.
절대 생명을 가질 수 없을 거라 믿었던
말라 비틀어져 있던 작은 나뭇가지에서
꽃잎마다 태양의 손바닥을 내보이며
스쳐 간 폭우나 번개의 그림자도 없이
누군가 몰래 물을 뿌려준 것처럼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서
잎이 돋고
꽃잎이 피어났다.
이 생명력의 기괴함을 바라본다.
치장을 한 채 꼼짝하지 않는 밤의 새들처럼
신경을 파괴하는 불면의 밤을 붙들고 있는 나와는 달리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