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단어들의 집

화려한 벽지를 떼어낸 뒤에 남은 문장들

by 구시안

사람들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저울을 들고 다닌다.

누군가의 어깨 위에
말없이 올려놓는 무게,
그것을
기대라고 부른다.


아침의 회색 하늘 아래에서
소년은 아직 자신의 이름도 완전히 모른 채
거리의 먼지를 차며 걷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미
그의 미래를 알고 있다는 듯
빛나는 문장으로
그의 내일을 적어 놓는다.


“훌륭한 사람이 되겠지.”
“똑똑한 아이야.”
“분명히 큰일을 할 거야.”


그 말들은
부드러운 꽃잎처럼 들리지만
실은 작은 납 조각처럼
주머니 속에서 점점 무거워진다.


나는 흘러가는 시간속에서 보았다.

어떤 이들이
타인의 꿈을 입은 채
너무 큰 옷 속에서
어깨를 움츠리고 걷는 것을.


그들의 발걸음은
자신의 길이 아니라
사람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보이지 않는 길 위에 놓여 있었다.


기대는
때로 별처럼 말해진다.

멀리 빛나는 것,

누구나 올려다보는 것,
하지만
가까이 가면
차갑고 말 없는 돌.


그래서 어떤 밤에는

누군가 조용히
하늘에서 별 하나를 떼어내
주머니 속에 넣어버린다.


그리고 속삭인다.

“이건 내 것이 아니야.”

그 순간
도시는 조금 어두워지지만
그의 눈동자 속에서는
처음 보는 새벽이 떠오른다.


사람들의 기대가
바람처럼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한 사람의 진짜 목소리가
천천히
자기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이름은
아무도 써 주지 않은
하얀 종이 위에서

자신의 문장을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을 기대한다.

익명화하거나

평범하게 할 것이 아닌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구시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자각(自覺). 나의 비릿한 언어가 향기로워질 때까지 낮과 밤을 걷기로 하다. 브런치 +154

899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41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641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8화밤의 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