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감촉

아무도 읽지 않을 글

by 구시안

시간의 감촉을 느끼게 하지 못하면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음악에는 현실, 본질, 과거, 미래, 지금이 들어있어야 한다.


글도 그런 것이다.

시간의 감촉이 들어 있는 글이 눈에 멈춰 서면 그렇게 읽게 되는 순간을 경험하는 것처럼. 음악과 글이 그리고 예술이라고 불리는 모든 몸짓과 그려진 것들이 그러하듯, 사람이 만들어 놓은 그 감촉들을 느끼는 일을 예술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류가 막 생겨나 불행을 시험해 보던 시절이 있었다면, 그 누구도 인간이 언젠가 불행을 연속해서 생산할 능력을 갖게 되리라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그런 시간 속에 태어난 것들이 예술이라는 이름이다. 가끔 내가 쓴 글을 아무도 읽지 않을까 봐 걱정을 해야 하는지 생각한다. 나는 인생에서 관심을 돌리기 위해 글을 쓸 뿐이지만, 출판하는 이유가 게임의 법칙처럼 적용되기가 싫어, 매일 밤 이렇게 알맹이들을 생산하고 내가 쓴 글들이 갑자기 없어지는 현상을 겪고는 하지만, 그것이 유감스럽지는 않다.


어느 날부터 평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언어를 배우고 나서부터의 큼지막한 일기장에 써 내려가는 글을 잃었다는 사실을 두고 몹시 비통하거나 미칠 것 같지는 않으리라고 믿었는데, 책장을 정리하며 버린 세월이 남긴 시간의 감촉들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보고, 내가 글을 쓴 종잇장들을 보살피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지는 않는다. 어느 아이가 마침내 잠자리로 가면 찾아올 평화를 기다리는 것처럼 간절했던 그 시절은 이미 지나가 버렸고, 마음으로 인생을 보게 될 나이가 지났으니, 틀림없이 글은 하나의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몇 해 전부터 그동안 썼던 글들을 정리하면서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고통과 좌절을 보면서 은근히 즐거워하는 인간 심리의 어둡고 헤아리기 힘든 사악함에 빠졌있다가, 우스꽝스럽거나 초라하게 느껴질 때 신기한 감정의 변형에 의해 미학적인 불편함과 은근한 노여움을 새겨왔는지도 모른다. 정신의 활동력이 왕성한 사람들이 다들 그렇듯, 나는 한 곳에 고정된 삶에 대해 어쩌면 태생적으로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삶이나 낯선 장소를 질색하는 것을 보면 어느 담벼락보다 철저한 경계선을 그어놓고 나만의 정원을 구분 지어놓은지라, 나는 타인들을 그들의 위치에 두고서 완벽하게 분리해 놓고 관찰하고 있었다.


행동하지 않고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살아가며

많은지를

내 인생의 관심사이고

사색이 주제가 되는 것을 보면

나는 어디에 종속되길

거부하는 사람이 맞다.


가끔 그렇게 여행을 좋아하면서도,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만 해도 멀리가 나는 순간도 존재하니까.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들은 이미 온 세상에 퍼져 있는 마치 한 번쯤은 본 거 같은 느낌이 들기에 아직 보지 못한 것들을 이미 다 보았다고 말한다면 거짓말 일 테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마주하는 나의 권태는 겉으로만 서로 다른 사물들과 개념들 뒤에 놓인 영원한 동영상을 상영 중인지도 모른다.


나무로 지은 오두막과 수백 명의 힘으로 옮겨 지은 궁궐의 동등함을 논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내 삶 속 흘러가는 모든 것의 정체되거나 활동하거나,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풍경처럼, 잠시 빌린 병풍처럼 자리한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과,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어렴풋이 멀리가 나고 움직이면 상태가 악화되는 병을 가진 것처럼. 내가 결코 읽지 않을 책만이 나의 두뇌를 괴롭히지 않는 이상, 살아가며 밀려드는 졸음은 오지 않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흘러가는 것은 강처럼 흐르는 세월이다.

그것을 감히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다.

생각하고 느끼고

의식이 깨어 있는

낮과 밤의 조화 속에

열차와 자동차

바다를 가르는 가 일으키는

끔찍한 히스테리 때문에

잠들지도 깨어 있지도 못하는 짧은 여행의 반복처럼.

꿈으로 가득한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서로 다른 느낌들이 겹치고

본 것들에 취한 나는

몽롱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영혼이 충분히 건강하지 않다는 이유로

편히 쉴 수가 없다는 변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포기는 자유라고 말하고 싶다.

원하지 않는 것이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낮과 밤이 흘러가는 광대한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영혼과 경험의 공통점을 묘사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은데, 알 수 없는 깊이 속에 거대한 높이의 산맥이 낯을 가려주고 밤을 가려주며 들판과 계절과 집과 얼굴과 몸짓. 내가 입는 옷이나 가끔 짓는 미소나. 사랑과 전쟁 유한한 신과 무한한 신 사이를 오가며 미래팔이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마치 나는 형체 없는 밤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다보는 지성을 지닌 괴물처럼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원시적이지 않는 곳에 살아가며

아담과 이브의 후손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만한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화려한 색깔로 꾸민 소설 같기도 하며, 영원한 것이 얼마나 지독한지를 말하는 시인의 한숨이 들어간 한 줄의 운율처럼, 단순하게 본다면 아무것도 아닌 이 현실을 살아가는 일은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깃든 그 평범한 어투와 집단성의 다양성을 경험하며, 다채롭게 이어지는 관습이나 인종 간의 차이 속에 생겨나는 광범위한 다양함이 아닌 거리 두기가 되고 있다는 사실일 뿐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그저 영원한 행인들의 발걸음처럼

자신 말고

또 다른 풍경이 계속 존재하게 되는

우리의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가진 것 없이

떠나야만 하는

우리는 내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물드는 밤.


스스로를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극단까지 살아보기를 원한다는 사실에

잠시 놀라다가

더 많이 정복하려 드는 미친 짓을 하고 있는

한계에 이르기를 좋아하는

극소소의 사람들만이

육체와 영혼을 다 바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인생 전체를

사랑하기에

타인을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모든 것을 얻어내기에는

부족한 힘을 아는 자들이

행복하길 바라며.


어느 순간

자신에게

공식적이고

완벽한 단념이 자리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태어나며 주어진 활동의 에너지를

다 소모하고

고요하게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 길 바란다.


아직은 나에게로 가는 길에서

멀어지거나

내가 사랑하는 삶을 보지 못한

장님이 되고 싶지는 않다.


세상의 추상적인 심연 속.

그 어디에도 없는 장소의

문 앞에 이르렀을 때,

아무도 쓰지 못한

글을 남기고 싶다.


운명이 명령하고

우연이 결정하는 대로

따르고

잊힌 약속을

충실히 지키면서

분개하지 않는 마음으로

무수한 날들이 지나가고 있다.





Souvenirs lointains


먼 기억들.

혹은

이미 지나버린 모든 것을

봄에 담긴 비와 바람

태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마음 속 여림에 담긴 피는

웃음에 금빛 제 입술을 주고

큰 도약에 달나는

제 무게를 주는 현실처럼

연길 짓는 열 손가락들이

빛과 재를

써내려가는 밤.


가장 막연한 구름과

가장 평범한 말

그리고

잃어버린 대상을 찾아

모든 것을 날개짓하게 하는 밤.


피아노의 선율이

허공을 맴돌다가 사라질 때까지.

괴로워하는 모든 이에 마음이

내 마음과 비슷해지도록

그들에게 모든 생명을

제공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면

사랑한다는 말을

제대로 입술을 열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기 넘치는 달 호수의

밤의 경이로움 위에

제 이름을 써봅니다.



월,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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