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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호박피자 Oct 10. 2020

내게 주어진 단 하나의 의무

 어제 다정스레 손 붙잡고 밤길을 걷는 엄마와 딸을 보았다. 시선이 닿지 않도록 눈을 돌렸다. 마음이 좁은 나는 다른 모녀지간에 샘이 난다. 얼마나 시간이 더 지나야 저런 그림을 아무렇지 않은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걸까.


 내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엄마가 아닌 내 이야기. 엄마 없으면 세상 무너질 줄 알았던 내가 의외로 엄마 없이도 혼자 꽤 잘 지내고 있는 내 이야기. 잘 지내고 있기는 한데 실은 일상의 부분 부분에 엄마의 빈자리를 보고 마는 내 이야기. 이 글을 썼던 순간들을 되돌아본다. 밝게 썼던 글들은 정말 밝은 마음으로 썼던 걸까. 무겁게 썼던 글들은 정말 무거운 마음으로 썼던 건지. 실은 더 밝게 비치려 그리 썼던 건 아니었을까. 솔직히 더 무겁고 어둡게 보이고 싶어 그리 썼던 건 아니었는지. 괜찮았던 건지도,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 한 건지도, 혹은 괜찮고 싶어서 괜찮다고 한 건지도. 정말 나는 있는 그대로를 적었을까. 사실은 누군가에게 읽힐지도 모른단 마음으로 잔뜩 의식하며 쓰진 않았나. 의식을 했다면 어느 정도로 했던 건가. 나의 슬픔을 전시하는 건 아닐까 망설이면서도 실은 슬픔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 글을 쓰는 내내 주변 사람들에겐 다 털어놓지 못했던 감정과 생각들을 배설할 수 있음에 개운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글을 마무리 지으며 이 뒤엉킨 감정들과도 작별을 고하려 한다.


 ‘나중에’, 우리의 행복은 ‘나중에’에 존재했다. 물론 함께했던 시간은 행복했다. 하지만 그건 미완의 행복이었다. 넉넉하지 않았던 우리는 경제적 안정이 이뤄지면 더 행복해질 줄 알았다. 아직 손에 닿지 않는 거리에 있는, 그럼에도 조만간 손에 닿을까 싶은 가까운 듯 실은 먼 미래였던 ‘나중에’ 커다랗고 완전한 행복이 올 거라고 믿었던 거 같다. 특히 아직 대학생, 취준생이었던 나는 그럴싸한 직장에 들어가서 더는 빠듯한 주머니 사정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오면 해피엔딩을 이룰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나중에’는 결국 끝내 우리 손에 닿지 않았다. 우리는 어리석었다.


 엄마는 기본적으로 나에게 그 어떠한 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때론 교사나 공무원이 되면 좋겠다고 하긴 했어도 거기엔 ‘반드시’가 붙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어떤 진로를 바라든 무슨 계통으로 가고 싶어 하든 어떠한 미래를 그리든 항상 응원하고 격려해줬다. 나를 믿어주었다. 그런 엄마도 내게 분명하게 바라는 것이 있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언제나, 늘 이야기했던 엄마의 바람. “엄마는 네가 그저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엄마는 이제 여기 없다. 내가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엄마는 이제 여기 없다. 그렇지만 나는 이곳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엄마의 바람, 나에 대한 엄마의 바람을 이뤄가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엄마 없이도 여전히 엄마 딸로 살겠다 마음먹은 내게 주어진 유일한 의무, 나의 행복.


 앞에 붙은 조건들을 모두 떼려 한다. 그 어떤 조건에도 의탁하고 싶지 않다, 더는. 조건을 붙여야만 행복이 충족된다면 그 조건이 상실됐을 때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엄마로 인해 행복했던 나는 엄마가 없다는 이유로 남은 인생을 온전치 못한 행복만을 누리며, 아니 더 정확히는 온전치 않기에 불행하다고 느끼며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기엔 백세시대 오늘날 내 인생 살 날이 너무 많이 남았다. 결핍 그 자체가 아니라 결핍감이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결핍은 두고 결핍감만 지워보겠다. 나를 둘러싼 불완전성이 불행한 마음으로 직결되는 선로를 끊고 싶다. 그러니 앞에 조건을 떼고 그냥 행복해지고 싶다. 그냥 행복한 사람. 엄마 없이도 그냥 행복한 사람.


 지금 그렇게 실천하고 있냐 묻는다면 즉답 가능 ‘전혀’. 툭하면 친구들과 “우리 인생 어떡하지”라고 시작해서 “역시 답은 로또뿐이지”로 귀결되는 이야기를 나누는 소시민이다. 번아웃 빔을 직격으로 맞고 맘 속으로 퇴사 d-day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는 직장인이다. 연애는 안 하니, 결혼해야지, 더 늦으면 애를 못 낳는다 라는 말에 좀처럼 표정 관리가 안 되는 30대 싱글 여성이다. 내 처지에 불만 많고 곧잘 남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래도 최소한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고 되도록 언제나 나를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 나의 행복이 미래의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에 어딘가에 의지해 얻어지는 것 또한 아니길 바란다. 언젠가 미래에 다가올 산더미의 행복보다 고작 초코바 하나의 보잘것없는 크기라도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하는 삶을 살고 싶다. 서툴더라도 오롯이 스스로 찾고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행복을 누리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순간순간 매일매일을 채우고 싶다.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선언이다.

없는 거 투성이 못난 거 투성 이어도 그래도 그냥저냥 지금 행복하겠다고.

나중은 없다고.


 엄마가 조금 서운하게 생각할까. 엄마 없이도 그렇게 행복하냐고. 그래도 내가 엄마 없다고 슬퍼하는 것보단 엄마 없이도 재미나게 사는 걸 훨씬 더 좋아하겠지.

사실 알고 있어. 엄마 서운하게 생각할 사람 아닌 거. 내 행복이 엄마 행복이니까. 그러니까 오래오래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갈 거야. 가끔 구경 와. 거기서 보면 우당탕탕 지내는 내 모습 진짜 웃기겠다, 그치? 그래도, 그럼에도 바늘구멍처럼 아주 작은 틈으로 쉴 새 없이 새들어오는 그리움과 쓸쓸함은 막을 수가 없네. 이건 내가 혼자 감당해볼게. 엄마가 예뻐 어쩔 줄 몰라하던 애기가 이래 봬도 벌써 서른둘이니까.


 어제 본 그 풍경을 바꿔 그려본다. 환절기 밤바람은 쌀쌀해도 오른손에 붙잡은 손은 따뜻하다. 고개 돌리니 나보다 키가 작아 내려다봐야 하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사람이 보인다. 딸내미랑 나온 밤 산책에 기분이 좋아 보인다. 내 얼굴에도 웃음이 잔뜩 걸려 있고. 얼마 전 끝나버린 드라마 얘기에 열을 올린다. 역시 드라마 취향 비슷하니까 할 말이 많다. 나중은 알 바 없고 우리는 지금 정말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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