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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호박피자 Nov 26. 2020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괜찮은 걸까. 아니, 이렇게까지 솔직할 수 있어야 에세이구나. 오늘 다 읽은 에세이집에 대한 감상은 ‘놀라움’이었다. 정제되지 않은 작가의 생각과 느낌이 거칠고 투박한 형태로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들에 조금 당혹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고개가 끄덕여졌다. 온갖 욕심 가득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게 나만 그런 건 아니었구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어. 차라리 이렇게 노골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말하니 약간 통쾌하기까지 했다. 순수한 꿈을 꾸는 사람도 어딘가는 있겠지. 그래도 대부분은 그 꿈에 ‘세속적’이란 수식어가 붙는 욕심들도 섞여 있을 것이다. (나만 그래?) 원하는 목표를 이루면서, 기왕이면 경제적 이득도 함께 손에 들어왔음 싶다. 볕 잘 들어오는 베란다가 있는 방 2개짜리 집에서 살고, 자동차도 부릉부릉 몰고, 주머니 사정 걱정 없이 라떼를 매일매일 마시는 그런 여유로운 삶. 얼마나 좋아. 무릎을 탁 치며 생각한다. 작가님, 저도 그래요. 저도 욕심왕이에요. 빙글빙글 돌려 말할 줄 모르는, 아니, 그보단 돌려 말하고 싶지 않단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이렇게 책이 되어 많은 사람들 손에 들리는 에세이에서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쓰는데, 읽어주는 사람도 없는 글을 쓰는 나는 왜 솔직하기가 어려운 걸까.


 솔직하지 않다는 게 거짓을 말한다는 건 아니다.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는 거다. 나 자신에 대한 사실을 오픈된 공간에 적는 게 두려운 것도 일부 있다. 하지만 그뿐 아니라, 감정이나 생각을 적는 것에 있어서도 망설임이 끼어들 때가 자주 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는데,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이 생각은 남들한테 말하긴 좀 부끄러운 것 같아.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게 상당량의 '글러먹음'과 아주 약간의 '썩 나쁘진 않음'이라 치면, '글러먹음'은 되도록 적게, '썩 나쁘진 않음'은 확대해서 표현하고 싶은 거다.



 내 플레이리스트엔 친한 사람들한테도 말하기 창피한 곡들이 꽤 들어 있다. 나는 정말 좋아하지만, 내가 이 노래를 듣는다는 걸 다른 사람들은 모르면 좋겠다. 혹시라도 내가 지금 무슨 노래를 듣고 있는지 남들이 물어본다면, 팝이나 인디 음악, 아무튼 좀 있어 보이는 음악을 들을 때면 좋겠다. 남들 눈에 내가 괜찮은 사람으로 비치길 바란다. 못난 모습 들키고 싶지 않다. 말 못 할 내 음악 취향은 꽁꽁 숨기고, 세련된 음악을 듣는 나로 보이고 싶다는 그런 마음. 글 쓸 때 솔직해지지 못하는 마음은 그 마음과 결을 같이하는 것 같다. 글 속의 내가, 나 자신이 바라는 사람이길, 글을 통해 나를 접하는 사람이 나를 그런 사람으로 인식해주길, 그런 마음.


  남이 읽진 않아도 얼마든지 접근 가능한 곳에 글을 올려 솔직해질  없는 거라면, 그냥 혼자 일기장에 쓰면 되잖아.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토록 활짝 열린 공간에 글을 써 남겨두고 싶다. 누군가 우연히라도 읽어줄지 모른다는 생각이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내려가는  조금이라도  고심하게 만든다. 공을 들이게끔 한다. 속내를 말하기로    말해보자면, 어쨌든 누군가 읽어줄지도 모르니까, 그러길 바라니까 여기에 쓰는 거다. 누가 읽어주면 좋겠어. 그런데 그런 마음이라면,  솔직해져야 하는  아니니. 쓰고 있는  앞에서 얼마나 솔직했니. 진짜의 나를 여기  모두가 보는 곳에 데려올  있겠니. 끄집어낼  있겠니. 물음 앞에 호쾌하게 답을 하기가  어렵다.


 글을 쓸 때 툭하면 ‘솔직히 말하면’이라고 적고는 한다. '솔직히 말하면'이라고 쓰면서 정말 내 글은 솔직했나. 얼마나 많은 거름망을 거치고 거쳤던가. 때깔 좋게, 그럴싸하게 보이려 내 글에 화장하고 포장했던 순간들이 스쳐간다. 무슨 배짱으로 ‘솔직히 말하면’이라 했던 건가. 그래도 이 글만큼은, 꽤 애썼다. 나 솔직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솔직해지는 것에 ‘선뜻’이란 말을 붙이기가 영 쉽지는 않다고, 솔직하게 말했으니까. 네, 저는, 솔직히 말하면 솔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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