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14.
베테랑.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단순히 일을 오래 했다고 베테랑이 되는 건 아닌 듯합니다.
최근 읽고 있는 『베테랑의 몸』이라는 책의 표지에는
'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에 대하여'라는 문장이 적혀있습니다.
흔히 직업병이라고 하죠.
디자이너에게 투명은 회색 체크무늬라는 귀여운 것부터
시끄러운 현장 작업자가 가질 수밖에 없었던 큰 목청까지.
일의 흔적이 몸에 심기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인 듯합니다.
저도 직업병은 있습니다.
어딜 가나 오탈자, 띄어쓰기, 문장 표현 방법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특히 띄어쓰기 2개가 연속으로 쓰인 문장은 기가 막히게 잘 찾아냅니다.
카피라이터를 업으로 시작하면서 브랜드의 고객통지문을
매주 몇 개씩,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던 업무가 몸에 자연스레 스며든 탓입니다.
저는 사실 이 병적인 집착 아닌 집착이 조금 뿌듯하긴 합니다.
신입사원 때의 초심을 계속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아직 초심 타령을 하는 걸 보니, 베테랑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의미겠죠.
가끔은 베테랑이 마치 게임처럼 인간이 경험하는 2차 전직의 결과인 듯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일에 몸이 동기화되어 마치 이 일을 위해 다시 태어난 인류처럼 말입니다.
어두운 곳에서 길을 잘 찾는다던지,
바닷속에서 오랫동안 숨을 참을 수 있다든지,
뜨거운 냄비를 맨손으로 척척 잡아드는 것까지.
사람은 알게 모르게 진화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오랜 시간 같은 분야의 일을 반복하며
처음 일을 할 때의 설렘이라던지, 두려움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날 선 감각으로 자신만의 진화를 만들어 갈 때
즉, 일에 대한 감정보다 감각이 앞서는 순간
비로소 베테랑이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혹시나 누군가 저는 어떤 베테랑이 되고 싶냐 물으신다면
이미 대답은 정해놨습니다.
저는 휴식의 베테랑이 되고 싶습니다.
물론 휴식의 설렘만은 간직하고 싶지만요.
'호모휴식쿠스'
나름 괜찮은 진화처럼 느껴지는 건
오늘이 아직 화요일이라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호모휴식쿠스가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이 오길
갑자기 바라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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