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의 타이밍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 작품, 2018/02/28 개봉

by 간밤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1.

영화가 시작되면 자전거를 타고 시원하게 내리막을 달리는 혜원(김태리)이 보인다. 영화 속 바람결은 곧장 객석으로 불어오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청량한 오프닝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혜원의 나레이션. 겨울의 매서운 계절 풍경 사이로 뭉근한 온기를 품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할 준비를 한다. 자, 이제 힐링의 시간이다.


2.

최근 몇 년 사이에 힐링 무비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온 외국 영화들이 트렌드처럼 떠올랐다. 물론 비단 영화판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일상의 각박함에 반대급부로 힐링이라는 코드가 급부상하면서 서점에서는 힐링 에세이 신간들이 베스트셀러 칸에 진열되고 웃음에 강박적으로 얽매여 있던 TV예능들도 어깨 힘 빼고 나른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예능 컨텐츠를 런칭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힐링의 늪에 허우적대는 가운데, ‘리틀 포레스트’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3.

현재 한국영화 제작상황과 흥행 되는 장사의 법칙 속에서 ‘리틀 포레스트’는 상당히 독특한 행보를 걸어온 영화다. ‘내부자들’의 흥행 이후로 유혈이 낭자하고 육두문자가 남발하는 범죄/스릴러 영화들, 소위 쎈 영화들이 충무로를 장기 집권하는 상황에서 ‘리틀 포레스트’ 프로젝트는 콘크리트 틈 사이에 겨우 싹을 틔운 새싹 같은 모양새였다. 사계절을 오롯이 담기 위해 1월부터 10월까지 4번의 크랭크 인, 크랭크 업은 이 영화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뚜렷이 보여주는 사례다. 유행을 거스르고 속도를 역행하는 그들의 행보는 그러나 오히려 뿌리를 깊게 내린 나무처럼 어떤 단단함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영화는 조용히 사계절을 통과하며 촬영을 마치고 그 이듬해 봄(이라기엔 추위는 여전했지만)에 개봉한다.


4.

제작비 15억원, 손익분기점 80만명이었던 ‘리틀 포레스트’는 기대치를 훌쩍 넘어 최종 누적 관객 수 150만명으로 마무리하며 유의미한 성과를 남겼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후죽순 쏟아지는 힐링의 익숙하고 지겨운 유행 속에서 ‘리틀 포레스트’는 힐링에도 타이밍이 중요함을 깨닫게 한다. 괜찮아, 다 괜찮아 라는 위로의 한마디를 노골적으로, 반복적으로 드러내기 보다는 계절의 변화에 맞춰 과실이 익어가는 타이밍, 씨앗을 심는 타이밍, 뿌린 곡식을 거두는 타이밍에 슬그머니 마음 한 켠에 비워져 있는 주머니 속으로 쏙 들어오는 ‘리틀 포레스트’의 힐링은 거부감 없이 스며드는 형태를 취한다. 이 힐링의 타이밍은 영화의 외적으로도 두드려졌는데, 지난 연말의 피 튀기는 혈전 (‘신과함께’,’강철비’,1987’) 그리고 마냥 웃으며 볼 수 없었던 ‘염력’, 설 연휴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범죄물 (‘골든 슬럼버’, ‘조선 명탐정 3’)들이 극장가를 점령하며 피로감을 느낀 관객들에게 ‘리틀 포레스트’는 숨 고르기 하는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손익분기점에 거의 2배에 근접한 흥행에 성공한 것이다.


5.

이렇게 어디를 뜯어보아도 훈훈함이 가득한 이 영화에도 물론 단점은 있다. 농촌 생활에 대한 판타지를 불러일으킬 만큼 영화 속 농촌 묘사와 현실 사이에 괴리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것. 또한 농촌 출신이 아닌 서울 토박이의 입장에서 그들의 귀농생활을 (물론 은숙(진기주)은 시골 토박이다) 지켜보면서 100% 공감할 수 없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 지점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견지하고 있는 태도는 앞선 단점들을 상쇄할 만큼 훌륭하고 반가운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리틀 포레스트’ 케이스를 통해 앞으로도 극장가에서 쉼터 같은 영화들이 많이 나오길 간절히 바란다. 아, 물론 줄줄이 개봉하는 것이 아닌 힐링의 타이밍에 맞춰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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