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김다미부터 '꾼' 나나까지
아직 국내 영화 시상식들이 열리려면 2달은 더 기다려야하지만, 사실상 신인여우상 후보들은 어느정도 윤곽이 잡힌 상태인 것 같다. 작년엔 '박열'의 최희서 배우가 신인여우상을 휩쓸어 담으면서 그 저력을 과시했다면 올해는 어떤 결과들이 나올지 궁금해지는 가운데, 재미로 2018년 신인여우상을 예측해봤다.
(2017년 11월 개봉작 ~ 2018년 9월 개봉 예정작을 기준으로 작성)
1. '마녀', 김다미 (감독 박훈정, 2018년 6월 27일 개봉)
작년 8월 박훈정 감독의 'V.I.P.'가 흥행에 실패하며 후속작은 '신세계 2'일거라 예상하던 가운데, '마녀'의 제작 소식은 낯설 수 밖에 없었다. 얼핏 정병길 감독의 '악녀'를 떠올리게 하는 시놉시스와 검색해도 정보가 1도 나오지 않던 주연 배우 김다미. 그렇게 조용히 촬영을 마치고 조용히 후반작업 중이던 지난 4월, 우연한 기회로 '마녀' 블라인드 시사회를 다녀오고 나서 생각이 180도 바뀌어버렸다. 필모그래피가 거의 없던 ('나를 기억해', '동명이인 프로젝트'가 있기는 하지만 단편 주연 또는 조연이었다), 검색해도 나오지 않던 김다미라는 배우의 '마녀'속 모습은 너무나 놀라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라인드 시사 특성상 어디에도 관련 내용을 발설할 수 없기에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며 개봉소식이 들려오길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개봉일정이 잡히고 최초 시사회 이후의 반응을 통해 내가 느꼈던 그때의 충격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말그대로 영화계는 김다미라는 배우의 출현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것이다. 여배우 원톱 액션물인 동시에 주연이 신인배우라는, 이 위험천만한 프로젝트에서 김다미는 전혀 신인답지 않은 면모로 관객들에게 제대로 눈도장 찍었다. 게다가 '마녀'는 여름 텐트폴 라인업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꾸준히 뒷심을 발휘하며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은 318만명을 동원하며 후속편 제작까지 확정된 상황이다. 그렇기에 올해 신인여우상에 가장 근접한 배우가 아닐까 예상해본다.
2. '죄 많은 소녀', 전여빈 (감독 김의석, 2018년 9월 13일 개봉 예정)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부터 화제를 몰고 다녔던 '죄 많은 소녀'를 연말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보려고 피켓팅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나 주연을 맡은 전여빈 배우에 대한 극찬이 영화를 더 궁금하게 만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영화는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본 편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영화에 대한 상찬들이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영화 속 전여빈 배우의 용암을 머금은 화산 같은 연기는 영화 전체를 뒤흔들만큼 강렬했다. 특히나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을 특정 씬에서의 연기는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사실, 전여빈 배우의 필모그래피는 앞선 김다미 배우 보다 훨씬 풍성하다. 첫 작품인 '간신'에서부터 조연으로 출연하며 여러 독립 영화에서도 조연을 맡다 작년에 '여자들'로 처음 주연을 맡았다. 하지만 사실상 제대로 된 첫 주연작은 '죄 많은 소녀'라고 봐야할 것이다. 그리고 먼저 '죄 많은 소녀'를 본 대다수의 관객들이 올해의 신인여우상으로 전여빈 배우를 꼽을 정도로 수상 가능성이 충분한 상황이다.
3. '버닝', 전종서 (감독 이창동, 2018년 5월 17일 개봉)
이창동 감독의 신작 소식이 들려왔을때 가장 궁금했던 것은 전종서라는 배우였다. 이 배우야말로 정말 아무 필모그래피가 없어서 도저히 감을 잡을래야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개봉 전 영화에 대한 정보나 인터뷰에서도 쉽게 예측할 수 없었던 전종서 배우의 '버닝' 속 모습을 영화를 직접 보고 먼저 느낀 것은 상당히 낯설면서 신비롭다는 것이었다. 탁월한 연기를 펼쳤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해미 캐릭터의 미스터리함을 전종서라는 배우가 잘 체화했다고 생각한다. 즉, 테크니컬 측면에서는 다소 어수선하고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배우의 이미지와 캐릭터의 이미지가 절묘하게 맞물려가는 것을 목격하면서 배우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버닝' 속 해미도 인상깊었지만, 그것 보다는 다음 작품에서의 전종서 배우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가 너무나 궁금하다.
4. '리틀 포레스트', 진기주 (감독 임순례, 2018년 2월 28일 개봉)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리틀 포레스트'에서 김태리 배우보다 진기주 배우에 더 눈길이 갔었다. 익숙한 얼굴들 사이에서 신선한 배우가 등장하니 눈길이 자연스레 가는건 당연한 거고, 그게 신인여우상 후보들의 공통점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기주 배우가 특별하게 느껴진 것은 그녀가 맡은 은숙이라는 배역에 너무나 찰떡같이 잘 맞는 연기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연기의 완성도를 가르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연극적인 느낌의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마치 길거리에서 옆을 스치고 지나는 사람처럼 현실적이며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전적으로 후자의 기준으로 연기를 보는 편인데, 진기주 배우의 연기는 내가 좋아하는 연기에 정확히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진기주 배우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괜히 더 집중해서 보게 되고 그래서 다음 영화에서는 더 길게 오래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미스티', '이리와 안아줘'로 안방극장에서 충분히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극장에서 만나는 진기주 배우가 더 기다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5. '꾼', 나나 (감독 장창원, 2017년 11월 22일)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 아직까진 편견이 섞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나(임진아)는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재작년 우려 섞인 시선들 속에서 '굿와이프'를 통해 나나는 성공적으로 배우로서의 모습을 대중들에 선보였고 그 다음해 스크린 데뷔작인 '꾼'으로 이제는 미래가 기대되는 배우가 되었다. 케이퍼 무비 속에서 그려지는 홍일점 캐릭터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현빈, 유지태, 박성웅, 배성우라는 베테랑 배우들 틈에서 존재감을 잃지 않으며 제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앞으로 시상식 수상 레이스에서 얼마나 선전할지는 알 수 없지만, 충분히 주목할 만한 배우임에는 틀림없다.
이렇게 올해의 주목할만한 신인여우상 후보들을 꼽아보니 최근 충무로에 신선한 여자 배우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아 참 반가우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성 배우 위주로 돌아가던 한국영화판에 새로운 결을 새겨줄 여배우들의 선전을 기원하며, 누가 받을지 모르지만 누구든 올해 신인여우상을 수상할 배우에게 미리 축하한다는 말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