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또 다른 나를 입는 시간.

by 조성일

지금은 그러지 않지만, 한때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잠시 그대로 앉아있곤 했다.

온몸에 힘을 빼고, 길게 한숨을 여러 번 내쉬었다.

직장인으로서의 하루는 여기까지. 회사에서 웃어야 했고, 버텨야 했던 나를 주차장에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갈 새로운 나를 꺼내 입기 위해서였다.


한숨 사이사이 스스로 되뇌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결론은 늘 같았다. ‘웃자.’


그렇게 하루를 주차장에 남겨두고 활기찬 얼굴을 챙겨 집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며 밝은 인사를 건네고 아이를 안아 든다.

오늘 하루 아이와 씨름했을 아내의 등을 가볍게 토닥인다.

욕조에 물을 받고, 아이를 씻길 준비를 하면서 나의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아빠, 남편으로서의 시간.


이 시간만큼은 피곤함을 미뤄두고 나를 내려놓는다.

하지만 내려놓는다는 게 항상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나도 헷갈린다.

나를 내려놓는다는 게 정말 덜어내는 일일까, 아니면 더 짊어지는 일일까.


그런데 아이가 물장구를 치며 웃고, 아내가 조용히 내 옆에 앉는 그 순간, 복잡한 마음은 조금씩 가라앉는다.

내려놓는다는 건 나를 비우는 일이 아니라, 더 소중한 것들로 나를 채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늘 쉬운 건 아니다.

어떤 날은 버겁고, 어떤 날은 웃음이 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곳으로 돌아오는 이유는 분명하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작은 숨소리, 아내의 무심한 미소, 그 모든 것이 나를 다시 돌아오게 만든다.


아이가 잠든 뒤 집 안은 고요해진다.

불을 끄면 작은 스탠드 불빛만 남고, 아내와 나는 나란히 소파에 앉는다.

서로 말없이 TV를 켜지만 화면에 집중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내는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나는 물 한 잔을 마시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렇게 서로의 어깨에 기댄 채 아무 말 없이 잠시 쉬어간다.

해결되지 않은 고민과 내일의 부담이 여전히 따라오지만,

이런 평범한 순간에 그 무게는 잠시 가벼워진다.


그렇게 하루를 무사히 넘겼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아이가 잘 자고, 아내와 나란히 숨을 고를 수 있는 이 시간은 특별할 것 없지만 소중하다.

내일도 같은 하루가 찾아오겠지만,

괜찮다. 이 정도면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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