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게 되면 나는 하이에나가 되곤 한다.
어떤 내용을 써야 할까, 어떤 말을 이어갈 수 있을까, 얼마나 써야 할까, 어떻게 쓰면 보기에 좋을까. 끊임없이 물고 늘어지고 고민하다 보면,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피곤해진다. 어쩌면 그런 피곤함을 피하기 위해 글을 놔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 사람이 풀어내는 이야기, 그 사람만의 단어, 그 사람만의 말투가 매력적이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떠오르는 글을 적고, 다시 수정하는 방식으로 글을 써왔다.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글을 쓸 수는 없었지만, 그 사람의 감정을 내 안에서 끌어올려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일이 좋았다.
그렇게 6년을 글을 쓰고 나니, 한참 먹던 음식이 질려버린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느낌이, 말들이 더는 궁금하지 않았다.
드라마를 볼 때도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을 할지 상상하며 보곤 했는데, 어느 순간 정말 아무런 궁금증도 들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며 아내는 “어떻게 그렇게 공감하며 글을 쓰던 사람이 이렇게 차가워졌냐”고 되묻곤 했다. 심지어는 “그 글, 네가 쓴 거 맞아?“라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내가 쓴 책이었지만, 책을 내고 나서는 펼쳐볼 수 없었다.
마치 헤어진 연인의 흔적처럼, 책을 열어볼 용기가 없었다. 애써 외면했던 감정들이 폭발해 나를 덮칠까 봐 두려웠다. 그런데 어느 날, 무슨 변덕이었는지 책장을 펼쳐보았다.
읽어 내려가며 옛 감정에 젖었다. 나도 이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그 순간 문득, 마음 한 켠이 비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어 있다는 건 어쩌면 새로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글이 주는 위로, 공감받는 마음, 그리고 공감하는 마음이 다시 필요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건, 어쩌면 삶의 한 부분을 마주하게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감정을 따라가곤 했다. 그때의 나는 그렇게 나를 채우고, 또 나를 만들어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모든 걸 멈추고, 나 스스로를 감추려 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글을 쓰려는 지금, 그 시절의 나를 되찾고 싶다는 마음은 아니다.
그저 비어 있는 마음 한 켠에 무언가를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예전처럼 치열하지 않아도 괜찮고, 반드시 공감을 얻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지만, 어쩌면 지금은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걸 꼭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냥 이렇게, 지금의 생각을 글로 남기고 싶을 뿐이다.
그냥 그렇게 다시 한 번, 나를 담아낼 수 있기를.